산티아고 어게인 - 포르투갈을 걷다,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박재희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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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2018년 포르투갈 리스본 땅을 밟았습니다. 대학생 몇몇을 데리고 떠난 비전트립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계신 선교사님을 만나 싸네르카 장로교회에서 집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준비해 갔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손이 빠른 아이들은 처음부터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했습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에는 리스본 거리를 누비는 호사도 맛보았습니다. 구 도심을 걷는 기분은 그야말로 상쾌했습니다. 리스본이라는 도시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들만의 색깔과 문양까지도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밤에 다시 찾은 도시는 낮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하긴 우리가 찾은 곳은 노숙자, 마약중독자, 매춘부였습니다. 그들에게 빵과 음료, 과일을 담은 봉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어슬픈 노래를 불러드리며 나의 하나님께 손을 모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특별히 주의를 요하신 곳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우범지역.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곳, 어쩌면 리스본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에이즈 환자이자 마약 중독자인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음식이 담긴 봉지를 건네주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나에게 특별한 장소로 다가왔습니다.


2019년 여름 또 다시 대학생과 장로님과 집사님 한 분 총 9명이 다시 리스본 땅을 밟았습니다. 여전히 싸네르카 장로교회 아이들은 통제 바깥이었습니다. 18년에 만났던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19년에는 18년보다 더 재밌게 놀았습니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될 아이들이니 풀어놓았습니다. 싸들고간 선물 꾸러미도 알아서 가져가게 했습니다. 저마다 양 손 가득 무언가를 집어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으로도 참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19년에도 어김없이 마약촌과 노숙자를 찾아다녔습니다. 18년엔 가지 않은 집시 마을부터 찾아갔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더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곧 그곳이 철거된다고 어디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마음이 더 답답하게 쪼여왔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염려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밤 늦은 시간 음식 봉지를 싸들고, 통기타 하나를 매고 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이번엔 나에게 설교를 부탁하셨습니다. 느닷없는 부탁. 열 곳이 넘는 장소에 가서 그들의 형편을 두 눈으로 살피며 RPM을 최고치로 돌려 그들과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나누었습니다. 찾아가는 곳에서 대학생과 함께 "Lord I need You" 라는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브라질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몸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마약중독자이며,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그녀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고 나누었습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갑작스런 그녀의 오열. 선교사님에게 안겨 펑펑 우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알아듣는지도 모른 채 마음을 담은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God loves you dear, whenever and wherever!"

쉬는 날 리스본에서 놓칠 수 없는 명소를 돌아보는 호사를 또 다시 누렸습니다. 유럽대륙의 땅끝 "Cabo da Roca"와 신트라, 짝퉁 금문교와 예수상이 있는 곳까지 돌아보는 호사였습니다. 리스본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또 다시 리스본을 마음에 담아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포르투갈 리스본은 나의 마음 어딘가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은 도시입니다. 이런 나에게 산티아고 어게인이라는 책은 운명처럼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저자 박재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리스본에서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리스본에서 시작해서 포르투를 지나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의 길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리스본을 담고 있던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한 것처럼 이 책은 박재희 작가가 리스본에서부터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 순례의 길을 걸은 기록입니다. 800 킬로가 넘는 길을 걸으며 만난 자신의 마음, 순례의 길을 오른 다른 사람, 마을 사람, 주변 환경을 담아낸 기록입니다. 책의 끝자락에는 그녀가 걸었던 순례의 길을 지도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걸었던 순례의 길, 자신의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그곳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혹시라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겐 훌륭한 길잡이가 될 테고요.






길을 걷다보면 가장 먼저 길을 만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길을 걸으면 풍경을 만나고,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납니다. 길 주변에 사는 이웃을 만나고 도시를 만나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보면 어려움을 만납니다. 저자는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치를 당했습니다. 여행 경비부터 시작해서 여권까지 잃어버렸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씁쓸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2018년 비전트립 첫 나라였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대학생을 데리고 몇몇 명소를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소매치기 당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대학생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어이없게도 스페인 전통시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습니다. 대학생이 아닌 바로 내가. 현금,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등이 들어 있는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귀신 뺨치는 실력에 흔적도 없이 지갑이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여권은 숙소에 두고 나왔습니다.


분실신고를 위해 경찰소에 들렀더니 왜 그렇게나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이 많던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분들도 있었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실실 웃었습니다. 다행이 영어를 할줄 아는 경찰을 만나 어렵사리 신고를 하고 리포트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려운 사람이 그 돈으로 한끼 맛있는 밥을 먹길 바랐습니다. 어차피 잃어버린 지갑과 돈이기에 어려운 사람이 잘 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박재희 작가도 쓰라린 마음으로 나와 같은 마음을 품었더랬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 오른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었다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여행을 하면 늘 사람을 만납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불편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나중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풍경과 사건이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사람이 항상 마음에 남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기억하는 순간입니다. 동시에 인생이라는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작가 역시 산티아고를 걸으며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기 마련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은 만남을 기록을 남겨두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이 산티아고를 걷고 싶은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각자의 인생을 걷는 사람, 산티아고를 걸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해서 갑자기 뿌리 깊은 영성을 가질 수는 없지만 인생의 질문을 들고 걷는 사람을 나도 만나고 싶습니다.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내가 가진 질문이 시원스레 해결되진 않겠지만, 인생을 걸으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그 고민에 대답하기 위해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위로가 되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에 올라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걸어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만들기도 어렵고, 순례의 길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현실로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 안 된다면 아들과 단 둘이서라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아직 아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으니 이 역시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버킷리스트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인생의 방향타, 분깃점 역할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전할 수 있고, 이루어 보고픈 일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은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꿈꿀 수 있으니 그 역시 고마운 일이고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리스본에서도 걸어보고, 프랑스 생장에서도 걸어본 사람 박재희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곳을 걸은 기분마저 느낍니다. 무엇보다 산티아고를 걷고 싶은 열망이 피어오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하늘 길이 열리면, 나도 저 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50대 중년, 산티아고에서 길을 묻다
50대 중년, 산티아고에서 길을 묻다
저자: 이기황
출판: 이담북스
발매: 2020.08.15.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개정증보판)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개정증보판)
저자: 박재희
출판: 디스커버리미디어
발매: 2020.06.25.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
저자: 김효선
출판: 바람구두
발매: 201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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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끄기 연습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올가 메킹 지음, 이지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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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외국인으로부터 들었던 첫 한국말입니다. 태국 아주머니께서 저와 아내를 보시고 "빨리빨리!!" "바빠"라는 단어를 순진한 웃음과 함께 내뱉으셨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람이 얼마나 "빨리빨리"와 "바빠"라는 단어를 많이 말했기에... 한국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태국 아주머니가 이 단어와 그 뜻을 아실까? 조금은 민망하고, 시쳇말로 조금 쪽팔리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빨리빨리"와 "바빠"라는 말과 그 안에 담긴 정서 때문에 한국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한강의 기적은 뭐든 끝장을 내는,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결판을 내는 한국인의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빨리빨리" 와 "바빠"라는 단어를 무조건 부끄러워하거나 불편하게 대하지는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빨리빨리" 와 "바빠"라는 정신으로 살다 보니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한국 사회가 대단한 속도로 달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로 축축 처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멍 때리고 앉아 있으면 비생산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빈둥거리는 시간을 확보하기란 사치에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비단 직장인 뿐 아니라 학생의 처치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나 청년이라면 더더욱 그런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습관적으로 멍 때리거나,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크게 위로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멍 때리고, 느리게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생각 끄기 연습: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란 책입니다.







올가 메킹이 소개한 생각 끄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네덜란드어 "Nicksen"을 번역한 단어입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는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오죽하면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일까요. 닉센이란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올가 메킹도 끙끙댑니다. 우리말로 바꾼다면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멍 때리기" 정도입니다. 올가 메킹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저마다의 방식으로 닉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돌체 파르 네엔 테(Dolce far niente)"는 훌륭한 음식과 여유로운 생활 방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말입니다. 훌륭한 음식과 여유로운 생활방식 이 두 단어가 합쳐져 탄생한 말이며,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달콤함이라는 뜻입니다.


"시에스타(Siesta)" 시에스타는 지중해 국가 중 특히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활동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야외 활동을 하기 어려운 대낮에 낮잠을 자는 시간이며 이는 닉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행동입니다.


"안식일(Sabbath)" 금요일 해질 녘에 시작해서 토요일 해질 녘에 끝나는 안식일은 유대인 식의 닉센입니다. 안식일은 유대인이 예배, 가족, 공동체에 내어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일체의 스크린을 보는 일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각종 노동이 금지된 시간입니다.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유대인 문화에서 안식일은 참 특별한 날입니다. 안식일은 유대인 고유의 닉센의 시간이라고 할만합니다.


"게으름뱅이 운동" 네덜란드에 닉센이 있다면 영국에는 게으름뱅이 운동이 있습니다. 이 운동을 이끄는 호지킨슨은 이상적인 세상이란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서로에게 모자를 들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교외로 긴 산책을 떠나고 노닥거리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네덜란드인이 생활 속에서 즐기고 있는 닉센과 같습니다.


"무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 번역할 수 있는 한자입니다. 노자의 도교에서 유래한 단어이자 문화라고 하겠습니다. '무위'를 염세적 수동적인 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위는 목적 없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이것은 닉센과 비슷합니다.


"내면의 돼지 개를 꺼내다(den inneren Schweinehund auslassen)" 감을 잡으셨겠지만 독일어입니다. '어깨 위의 악마' '약하고 게으른 심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선택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면의 게으른 짐승을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생각 끄기 연습 103 ~ 107p 요약정리




닉센을 우리 말로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멍 때리기"가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식 닉센이라 부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멍하게 시간 보내는 사람을 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올가 메킹을 주장합니다. 오히려 멍하게 보내는 시간을 통해 삶의 질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올가 메킹은 닉센의 힘, 멍 때리기의 힘을 뇌 연구 결과로 보여줍니다. 사람의 뇌는 일을 할 때 특정 영역은 활동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리고 있을 때 사람의 뇌는 온갖 주요 연결망을 포함한 특별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뇌과학자 라이클은 이것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리고 있을 때 뇌는 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닉센이 기본 상태(Default Mode)이며 내면의 욕망이나 걱정, 돈 같은 외부 자극에 동기부여될 때 뇌의 특정 영역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리고 있을 때 우리 뇌는 모든 일을 하는 셈입니다. 닉센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올가 메킹은 닉센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만 닉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닉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습니다. 닉센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닉센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우울증을 앓거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거나, 고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닉센이 효과를 발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닉센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스스로 제한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닉센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닉센이 몸에 붙어 있는 네덜란드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 네덜란드 여자가 우울하지 않은 이유를 닉센에서 찾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네덜란드 사람이 그렇게나 행복하게 사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나와 같은 경우엔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꼭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닉센은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닉센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멍 때리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어려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어렵다니... 스스로도 조금 놀랐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에 시달렸습니다. 낮 시간에 멍 때리고 있자니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라는 일종의 강박과 불안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올가 메킹은 친절하게 나와 같은 사람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루 10분 생각 끄기를 연습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올가 메킹은 네덜란드 사람이 일정표대로 움직이는 습관을 제안하며 닉센 시간을 일정표에 넣으라고 말합니다. 하루 일정에 멍 때리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두라는 이야기입니다. 매우 혁신적인 생각이자 시도해 볼 만한 제안입니다.




나는 매일 새벽 조용한 예배당에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시간이 멍 때리는 시간은 아닙니다. 이 시간을 나는 삶을 돌아보는 시간, 시끄러운 마음의 욕망을 잠재우는 시간, 잠잠히 나의 사랑 나의 하나님을 바라는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 시간을 닉센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습니다.


사실 나는 설교 준비(엄청난 양의 글쓰기 작업)를 하면서 종종 멍 때리는 시간, 딴짓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설교 준비가 막히거나 진도가 나가지 않거나 뭔가 지지부진할 때면 멍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보내거나, 전혀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 후에 신기하게도 막혔던 부분이 술술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좀 더 명확한 닉센의 시간, 멍 때리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멍 때리기보단 다른 일을 하면서 뇌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유진 피터슨이 알려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작살꾼의 비유"입니다. 목사들의 목사라고 불리는 유진 피터슨은 설교자로서의 목사에게 작살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포경선의 목적은 고래를 잡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꾼은 정확하고 빠르게 작살을 던져야 합니다. 그가 실패하면 그 배의 목적이 실패하고,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의 목적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작살꾼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 햇볕 잘 드는 곳에 퍼질러 앉아 작살을 날카롭게 연마합니다. 일손이 부족해도 나서서 돕지 않습니다. 작살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작살만 만지작거립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낸 후 작살꾼은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을 던져 고래를 사냥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설교자가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내기 위해 다른 일로 지나치게 바빠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닉센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은 후 규칙적으로 하루 십분 닉센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의 뇌를 기본 모드로 돌아가게 하고 싶습니다. 뇌 구석구석 혈류를 흘려보내며 워밍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 후 내가 해야 할 일을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지도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삶을 조금 더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가 메킹의 말처럼 닉센을 시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쉽고, 만사가 행복하고, 절대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닉센을 통해 잠깐의 여유를 누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문장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닉센은 온전히 나로 있는 시간,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충전하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신경 끄기의 기술
저자: 마크 맨슨
출판: 갤리온
발매: 2017.10.27.

아무것도 하지 않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저자: 필립 들레름
출판: 장락
발매: 2000.01.15.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저자: 김현태
출판: 레몬북스
발매: 2018.12.20.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얻는 법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얻는 법
저자: 닐 파스리차
출판: 나무옆의자
발매: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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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탐정 윈스턴 : 열두 살 여자아이가 되다 고양이 탐정 윈스턴
프라우케 쇼이네만 지음, 국민지 그림, 송순섭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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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한 일본 영화 [비밀]. 엄마와 딸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불의의 사고를 당합니다. 아내와 딸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남편 하이스케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결국 아내는 운명을 달리하고 딸은 기적적으로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딸 모나미는 자신이 아내 나오코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지만 나오코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들을 딸의 몸을 입은 모나미가 줄줄이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고 소식을 조사한 결과 2년 정도 후면 영혼이 돌아온다는 결과를 봅니다. 이렇게 아내 나오코(모나미)와 하이스케는 그들의 삶을 살아갑니다. 딸의 몸을 입은 나오코는 교복을 입고 학교 생활을 합니다. 2년이 지난 후 나오코는 자신이 더 이상 나오코가 아니라 모나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남편 하이스케를 위한 나오코의 거짓말이지요.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영화가 무려 세 편이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두 편 영화를 모두 감상했습니다. 한편은 2000년에 개봉한 이병현 이미연 주연의 [중독]이란 제목의 영화입니다. 이병현과 이미연은 시동생과 형수의 관계로 나옵니다. 같은 날 형과 동생이 사고가 나고, 이 둘의 영혼이 뒤바뀝니다. 이후 형수와 시동생의 위험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입니다. 다른 한편은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아빠는 딸]이란 제목의 영화입니다. 아빠와 딸의 영혼이 뒤바뀝니다. 그 후 일어나는 각종 해프닝을 다룬 영화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편은 가장 최근인 2019년에 개봉한 [내 안의 그놈]이란 제목의 영화입니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던 고등학생 동현이 

 


 

 

 

 

영혼이 바뀌는 것을 테마로 한 네 편의 영화를 보았기 때문인지 [고양이 탐정 윈스턴: 열두 살 여자아이가 되다]에 더 마음이 끌렸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무시무시한 고모

 

무시무시한 고모

저자: 데이비드 윌리엄스
출판: 크레용하우스
발매: 2015.12.10.

 

할아버지의 위대한 탈출

 

할아버지의 위대한 탈출

저자: 데이비드 윌리엄스
출판: 크레용하우스
발매: 2018.02.20.

 

이별 대행 에이전시

 

이별 대행 에이전시

저자: 안네 헤르츠
출판: 문학세계사
발매: 2009.12.15.

 

 

중독

 

중독

감독: 박영훈
출연: 이병헌, 이미연
개봉: 2002. 10. 25.

 

아빠는 딸

 

아빠는 딸

감독: 김형협
출연: 윤제문, 정소민
개봉: 2017. 04. 12.
 

내안의 그놈

 

내안의 그놈

감독: 강효진
출연: 진영, 박성웅, 라미란
개봉: 2019.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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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잡는 해치 별숲 동화 마을 37
윤주성 지음, 홍선주 그림 / 별숲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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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은 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칼과 총을 좋아했습니다. 돌을 갓넘기면서부터 부엌살림을 마치 칼처럼 잡았습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검사라도 된 것처럼 진지한 표정과 자세로 엄마와 아빠에게 큰 웃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 씩씩한 소년으로 자란 나의 아들은 여전히 남성미를 한껏 뿜어내며 즐거운 방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지금까지 아들을 재울 때마다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건아, 나중에 유건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괴롭히는 괴물, 특별히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을 물리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아들은 종종 되물었습니다. "아빠, 세상에 괴물이 있어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응, 좀 이상한 괴물이 많아." 아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 무슨 괴물이에요? 어디에 있어요?" 나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가난, 질병, 가뭄, 미움, 다툼, 전쟁, 환경파괴... 등 대단히 무섭고 끈질긴 괴물이 많아. 언젠가 유건이가 크면 아빠랑 같이 아프리카에 있는 나쁜 괴물들 물리치러 가자." 아들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아빠, 무서울 것 같아요.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괴물이에요?" 나는 또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물리칠 수 있어. 아빠도 같이 갈테니까 같이 물리치자." 아들은 조금 더 씩씩해진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습니다. "예, 아빠! 좀 멀지만 함께 괴물을 물리쳐요!!!"


어릴 때부터 줄곧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나쁜 괴물이 실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들과 나는 괴물에 맞서 싸우고 괴물을 물리치는 사람이 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서 나의 손을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 주면서 함께 괴물을 물리치는 사람으로 자라가고 변화되길, 그런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와 아들은 운명처럼 괴물을 물리는 요괴 퇴치사 해치를 만났습니다.







바야흐로 조선 시대. 조신 시대를 주름 잡던 최고의 요괴 퇴치사 해치. 요괴 퇴치사 해치는 미래 사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는 요괴를 물리치라는스승의 명을 받고 머나먼 미래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요?


가장 먼저 해치가 만난 요괴는 귀수산이란 요괴입니다. 바다에 사는 요괴 귀수산은 흉악한 요괴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 받는 요괴입니다. 그것도 사람 때문에 괴로운 요괴입니다. 이 요괴가 견디지 못해 뻘떡 일어섭니다. 그때문에 지진처럼 땅이 흔들리고, 운동회를 하던 해치의 친구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해치가 나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이없게도 문제는 온갖 해양쓰레기가 귀수산의 목구멍과 콧구멍을 틀어막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해치가 귀수산의 콧구멍과 기도를 막은 쓰레기를 다 처리하자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었습니다. 귀수산은 힘겨운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스스로 봉요함으로 들어갑니다.


이 요괴는 요괴가 아니라 요괴스러운 인간의 탐욕과 결과로 고통받는 자연을 보여줍니다. 일본과 하와이 사이,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거대한 쓰레기 섬이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쓰레기 섬은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와 생활쓰레기로 가득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쓰레기도 상당히 몰려 있다고 합니다. 쓰레기섬의 크기가 무려 대한민국의 16배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새와 거북, 물고기가 쓰레기를 먹이로 알고 먹고 죽는 일은 다반사라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돔이 생기고, 북미대륙이 타고 있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빨리 탐욕이란 괴물을 물리쳐야 할 이유입니다.


두 번째 괴물은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홀리는 괴물입니다. 사람 마음 홀리는 대표적인 요괴는 당연 구미호지요. 여기서도 구미호가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가 갑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영혼마저 서서히 집어삼킵니다. 구미호에게 홀린 아이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구미호가 아이들의 마음을 홀리는 방법은 '미디어'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구미호가 두 번째 요괴입니다. 해치는 이번에도 멋지게 구미호를 물리칩니다. 이땐 해치와 함께한 삼족구(세 발 달린 강아지)가 큰 역할을 합니다.


미디어의 폐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쥔 아이들은 오로지 스마트폰만 보려고 합니다. 미디어 중독이란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란 뜻입니다. 얼마 전 나의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때였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의 아들이 한 여학생을 보니더 "스몸비다" 라고 외쳤습니다. 나는 아들이 아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저 아이 이름이 스몸비야? 이름이 희한하네." 아들이 낄낄대며 웃더니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빠, 좀비와 스마트폰을 합친 단어가 스몸비에요. 길을 걸을 때조차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사람을 스몸비라 불러요."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내가 운전하는 차량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걸었습니다. 아마 그 아이도 스몸비라는 단어를 알 것 같은데, 자신을 스몸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디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스마트폰을 꺼내 듭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영상을 보지 않으면 심심하다고 말합니다. 힘껏 뛰어놀아야 할 때에 스마트폰으로 들어갈 기세로 영상만 쳐다보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건강한 정서발달과 원만한 대인관계, 풍부한 정서함양을 위해서라도 스마트폰 문제는 자녀와 꼭 이야기를 하고, 제한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해치가 만난 세 번째 요괴 역시 사람의 탐욕과 직결된 괴물입니다. 산속에만 살고 있던 도깨비가 이제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해치를 만난 도깨비는 사람이 자신을 불렀다고 항변합니다. 사람이 도깨비를 불렀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도깨비는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던 산을 다 깎아버렸다고 말합니다. 숲을 파괴하고 산을 없애버렸으니 결국 자신은 갈 곳이 없고, 살 곳이 없어 사람 사는 곳으로 왔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 역시 사람의 일방적인 폭행 또는 착취에 가까운 난개발 문제를 꼬집습니다.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산을 깎고 공사하는 곳을 자주 목격합니다. 산을 깎아서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한 곳이 많아도 많아도 정말 많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산을 깎아 아파트를 만들고,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세웁니다. 글쎄요.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네 풍경을 보면 도를 넘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해치처럼 자연파괴라는 이름의 흉칙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요괴 잡는 해치]는 조선 시대 요괴 퇴치사 해치가 오늘 우리가 사는 곳으로 와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조선 시대 요괴 퇴치사가 현대의 괴물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물리쳐야 할 진짜 괴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합니다. 우리도 해치처럼 이 땅을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용기 있게 일어서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바다야 우리가 지켜 줄게

바다야 우리가 지켜 줄게
저자: 아망딘 토마
출판: 휴먼어린이
발매: 2021.04.30.

스마트폰 전쟁

스마트폰 전쟁
저자: 고정욱
출판: 크레용하우스
발매: 2021.05.15.

나의 숲을 지켜 줘

나의 숲을 지켜 줘
저자: 윤혜숙
출판: 키다리
발매: 2018.01.31.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을까?
저자: 이상옥 지음, 이주미
출판: 한솔수북
발매: 2021.07.05.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저자: 김백민
출판: 블랙피쉬
발매: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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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 낯선 길 위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만나다 진로 쫌 아는 십대 2
서와(김예슬) 지음 / 풀빛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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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유학 때 아내와 미국 이곳저곳을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아내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텍사스 달라스는 미국 남부 한 가운데 자리잡은 도시여서 여기저기 방문하기 좋은 위치입니다. 말이 그렇지 달라스에서 서부 LA까지는 논스톱 25시간을 운전해야 하고, 뉴욕까지도 25시간을 논스톱으로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대륙입니다. 첫 여행은 Las Vegas와 그랜드 캐년이었습니다. 전체 일정은 7일이었습니다. 다음번 방학 여행은 같이 공부하던 전도사님 부부와 뉴 멕시코에 일주일 여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그 다음 여행은 세인트 루이스를 거쳐 시카고, Niagara Falls, 보스톤, 뉴욕, 워싱턴, 아틀랜타를 거쳐 달라스로 복귀하는 2주짜리 여정이었습니다 왕복하고 보니 8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거쳐 Rocky Mountain National Park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살던 LA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습니다. LA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Hawaii에 스탑바이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보니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여러 번의 길고 긴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갈등한 적도 많았습니다. 서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꼼꼼하고 계획적인 아내는 방문하기 전부터 여행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일단 가서 보자는 식이었습니다. 가다가 맘이 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운전대를 옮겨도 좋다는 식이었지요. 다툼이 없을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나를 더 알게 되었고, 아내는 아내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여행을 통해 나는 아내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아내도 나라는 사람을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준 깨달음이자 배움이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시선에서 보기에 아직은 어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걷는 길, 걸으려 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소녀를 만났습니다. 필명부터 서와(글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18세에 스스로 자신의 필명을 붙이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소녀, 이제는 어느새 20대 후반에 들어선 청년작가의 책입니다.






놀라웠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십대 청소년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속세에 해탈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생 아들딸을 기르기 때문에 더욱 크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해탈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신 분으로 보입니다. 자녀에게 너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그 길을 걸어가라고 등을 떠미는 부모라니... 천년기념물로 보입니다.


용장 아래 약졸없다는 말처럼 그 부모 아래서 자란 서와는 참 대단한 행보를 보여줍니다. 홈스쿨링을 시작한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법을 찾아냅니다. 서와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그간 가보지 않았던 곳을 걸으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자신의 삶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10 후반에 들어서는 '공감유랑'이란 이름의 버스를 타고 300일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습니다. 3명의 선생님과 18명의 학생으로 조직된 공동체입니다. 300일이란 긴 시간동안 숙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가는 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돈을 벌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다녔습니다. 때로는 공연을 준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논어를 배우고 고추장을 만들고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을 탐색해 나가더군요. 십대 후반에 말이에요.


20대가 되어서는 모든 순례자의 꿈의 장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800킬로를 걷는 여정에 올랐습니다(저자 서와는 여기서 조금 더 보태 대략 900킬로를 걷습니다). 이 길고 긴 시간을 홀로 걸으며 자신의 삶을 탐색하고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서로를 격려하는 법을 배우고, 음식을 해먹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 시간동안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삶의 방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산티아고를 걸으며 짐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서와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작은 가방이라도 길고 긴 순례길에 거추장스럽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짐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짐을 가볍게 했습니다. 달팽이처럼 자신이 지고 갈만한 짐만 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20대 중반에도 이르지 않은 청년이 얻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결국 서와는 낭만 쫌 아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농촌으로 들어가 농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에서 정직하게 수고하고 땀 흘리며 농사를 짓고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정성껏 기른 작물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더군요. 영농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변 어르신과 이웃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강차를 만들어 수익을 올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이 젊은 청년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담쟁이 인문학교의 정신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내공 가득한 문장으로 각인하듯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서와 작가의 진심을 담아낸 문장 몇 줄을 소개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청소년 친구들이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걸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171p


내가 바라는 삶을 찾아가는 여행은 

밥상을 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길 위에서 밥을 지어 먹으며 많은 길을 걸었고,

지금은 밭에 다녀와 식구들과 나누어 먹을 밥상을 차리고 있다. - 177p


농사지으며 밥을 짓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이따금 장터에 나가 농산물을 팔고, 

친구들을 만나 재미난 작당을 벌이고,

또 걷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고 싶지 않다.

한 줄 안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으니까.'

"학교 밖에 내가 찾을 수 있는 정답이 있을까?' 생각하던 나는,

정답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 178p

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중에서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이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누군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허둥거립니다. 자라는 자녀는 세상에 휩쓸리며 개성을 잃어버립니다.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부모가 시크는 대로,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성공의 필수요건이 된 것 같은 낯선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서와는 돌멩이 하나를 던졌습니다.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보여주었습니다. 이 파장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갈지, 얼마나 큰 파장으로 성장할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나도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라고 격려하고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지 않고,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아들딸이 되길 응원해야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아들딸과 함께 산티아고를 걸으며 삶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힘겨운 여정이겠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걷고 싶습니다. 그땐 나의 나이도 적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 체력관리에 신경 써야겠습니다. 나의 아들딸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십대 자녀를 두신 부모라면 자녀의 책상위에 슬그머니 올려두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즐거운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산티아고 어게인

산티아고 어게인
저자: 박재희
출판: 푸른향기
발매: 2021.07.09.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저자: 황승찬
출판: 바른북스
발매: 2021.05.04.

느긋하게 걸어라

느긋하게 걸어라
저자: 조이스 럽
출판: 복있는사람
발매: 200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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