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어게인 - 포르투갈을 걷다,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박재희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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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2018년 포르투갈 리스본 땅을 밟았습니다. 대학생 몇몇을 데리고 떠난 비전트립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계신 선교사님을 만나 싸네르카 장로교회에서 집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준비해 갔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손이 빠른 아이들은 처음부터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했습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에는 리스본 거리를 누비는 호사도 맛보았습니다. 구 도심을 걷는 기분은 그야말로 상쾌했습니다. 리스본이라는 도시 자체가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들만의 색깔과 문양까지도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밤에 다시 찾은 도시는 낮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하긴 우리가 찾은 곳은 노숙자, 마약중독자, 매춘부였습니다. 그들에게 빵과 음료, 과일을 담은 봉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어슬픈 노래를 불러드리며 나의 하나님께 손을 모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특별히 주의를 요하신 곳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우범지역.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곳, 어쩌면 리스본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에이즈 환자이자 마약 중독자인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음식이 담긴 봉지를 건네주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나에게 특별한 장소로 다가왔습니다.


2019년 여름 또 다시 대학생과 장로님과 집사님 한 분 총 9명이 다시 리스본 땅을 밟았습니다. 여전히 싸네르카 장로교회 아이들은 통제 바깥이었습니다. 18년에 만났던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19년에는 18년보다 더 재밌게 놀았습니다. 어차피 통제가 안 될 아이들이니 풀어놓았습니다. 싸들고간 선물 꾸러미도 알아서 가져가게 했습니다. 저마다 양 손 가득 무언가를 집어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으로도 참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19년에도 어김없이 마약촌과 노숙자를 찾아다녔습니다. 18년엔 가지 않은 집시 마을부터 찾아갔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더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곧 그곳이 철거된다고 어디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마음이 더 답답하게 쪼여왔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염려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밤 늦은 시간 음식 봉지를 싸들고, 통기타 하나를 매고 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이번엔 나에게 설교를 부탁하셨습니다. 느닷없는 부탁. 열 곳이 넘는 장소에 가서 그들의 형편을 두 눈으로 살피며 RPM을 최고치로 돌려 그들과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나누었습니다. 찾아가는 곳에서 대학생과 함께 "Lord I need You" 라는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브라질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몸을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마약중독자이며,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그녀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고 나누었습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갑작스런 그녀의 오열. 선교사님에게 안겨 펑펑 우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알아듣는지도 모른 채 마음을 담은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God loves you dear, whenever and wherever!"

쉬는 날 리스본에서 놓칠 수 없는 명소를 돌아보는 호사를 또 다시 누렸습니다. 유럽대륙의 땅끝 "Cabo da Roca"와 신트라, 짝퉁 금문교와 예수상이 있는 곳까지 돌아보는 호사였습니다. 리스본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또 다시 리스본을 마음에 담아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포르투갈 리스본은 나의 마음 어딘가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은 도시입니다. 이런 나에게 산티아고 어게인이라는 책은 운명처럼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저자 박재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리스본에서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리스본에서 시작해서 포르투를 지나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의 길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리스본을 담고 있던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한 것처럼 이 책은 박재희 작가가 리스본에서부터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 순례의 길을 걸은 기록입니다. 800 킬로가 넘는 길을 걸으며 만난 자신의 마음, 순례의 길을 오른 다른 사람, 마을 사람, 주변 환경을 담아낸 기록입니다. 책의 끝자락에는 그녀가 걸었던 순례의 길을 지도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걸었던 순례의 길, 자신의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그곳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혹시라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겐 훌륭한 길잡이가 될 테고요.






길을 걷다보면 가장 먼저 길을 만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길을 걸으면 풍경을 만나고,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만납니다. 길 주변에 사는 이웃을 만나고 도시를 만나기도 합니다. 길을 걷다보면 어려움을 만납니다. 저자는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치를 당했습니다. 여행 경비부터 시작해서 여권까지 잃어버렸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씁쓸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2018년 비전트립 첫 나라였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대학생을 데리고 몇몇 명소를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소매치기 당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대학생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어이없게도 스페인 전통시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습니다. 대학생이 아닌 바로 내가. 현금,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등이 들어 있는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귀신 뺨치는 실력에 흔적도 없이 지갑이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여권은 숙소에 두고 나왔습니다.


분실신고를 위해 경찰소에 들렀더니 왜 그렇게나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이 많던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분들도 있었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실실 웃었습니다. 다행이 영어를 할줄 아는 경찰을 만나 어렵사리 신고를 하고 리포트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려운 사람이 그 돈으로 한끼 맛있는 밥을 먹길 바랐습니다. 어차피 잃어버린 지갑과 돈이기에 어려운 사람이 잘 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박재희 작가도 쓰라린 마음으로 나와 같은 마음을 품었더랬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 오른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었다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여행을 하면 늘 사람을 만납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불편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나중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풍경과 사건이 기억에 남을 뿐 아니라 사람이 항상 마음에 남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기억하는 순간입니다. 동시에 인생이라는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작가 역시 산티아고를 걸으며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기 마련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은 만남을 기록을 남겨두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이 산티아고를 걷고 싶은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각자의 인생을 걷는 사람, 산티아고를 걸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해서 갑자기 뿌리 깊은 영성을 가질 수는 없지만 인생의 질문을 들고 걷는 사람을 나도 만나고 싶습니다.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내가 가진 질문이 시원스레 해결되진 않겠지만, 인생을 걸으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그 고민에 대답하기 위해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위로가 되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에 올라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걸어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만들기도 어렵고, 순례의 길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현실로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 안 된다면 아들과 단 둘이서라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아직 아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으니 이 역시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버킷리스트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인생의 방향타, 분깃점 역할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전할 수 있고, 이루어 보고픈 일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은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꿈꿀 수 있으니 그 역시 고마운 일이고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리스본에서도 걸어보고, 프랑스 생장에서도 걸어본 사람 박재희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곳을 걸은 기분마저 느낍니다. 무엇보다 산티아고를 걷고 싶은 열망이 피어오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면, 하늘 길이 열리면, 나도 저 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50대 중년, 산티아고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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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기황
출판: 이담북스
발매: 2020.08.15.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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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희
출판: 디스커버리미디어
발매: 2020.06.25.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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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효선
출판: 바람구두
발매: 201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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