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끄기 연습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올가 메킹 지음, 이지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빨리빨리!!"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 외국인으로부터 들었던 첫 한국말입니다. 태국 아주머니께서 저와 아내를 보시고 "빨리빨리!!" "바빠"라는 단어를 순진한 웃음과 함께 내뱉으셨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멋쩍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람이 얼마나 "빨리빨리"와 "바빠"라는 단어를 많이 말했기에... 한국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태국 아주머니가 이 단어와 그 뜻을 아실까? 조금은 민망하고, 시쳇말로 조금 쪽팔리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빨리빨리"와 "바빠"라는 말과 그 안에 담긴 정서 때문에 한국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한강의 기적은 뭐든 끝장을 내는,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결판을 내는 한국인의 민족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빨리빨리" 와 "바빠"라는 단어를 무조건 부끄러워하거나 불편하게 대하지는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빨리빨리" 와 "바빠"라는 정신으로 살다 보니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한국 사회가 대단한 속도로 달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로 축축 처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멍 때리고 앉아 있으면 비생산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빈둥거리는 시간을 확보하기란 사치에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비단 직장인 뿐 아니라 학생의 처치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나 청년이라면 더더욱 그런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습관적으로 멍 때리거나,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크게 위로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멍 때리고, 느리게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생각 끄기 연습: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란 책입니다.







올가 메킹이 소개한 생각 끄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네덜란드어 "Nicksen"을 번역한 단어입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는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오죽하면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일까요. 닉센이란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올가 메킹도 끙끙댑니다. 우리말로 바꾼다면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멍 때리기" 정도입니다. 올가 메킹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저마다의 방식으로 닉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돌체 파르 네엔 테(Dolce far niente)"는 훌륭한 음식과 여유로운 생활 방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말입니다. 훌륭한 음식과 여유로운 생활방식 이 두 단어가 합쳐져 탄생한 말이며,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달콤함이라는 뜻입니다.


"시에스타(Siesta)" 시에스타는 지중해 국가 중 특히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활동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야외 활동을 하기 어려운 대낮에 낮잠을 자는 시간이며 이는 닉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행동입니다.


"안식일(Sabbath)" 금요일 해질 녘에 시작해서 토요일 해질 녘에 끝나는 안식일은 유대인 식의 닉센입니다. 안식일은 유대인이 예배, 가족, 공동체에 내어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일체의 스크린을 보는 일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각종 노동이 금지된 시간입니다.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유대인 문화에서 안식일은 참 특별한 날입니다. 안식일은 유대인 고유의 닉센의 시간이라고 할만합니다.


"게으름뱅이 운동" 네덜란드에 닉센이 있다면 영국에는 게으름뱅이 운동이 있습니다. 이 운동을 이끄는 호지킨슨은 이상적인 세상이란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서로에게 모자를 들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교외로 긴 산책을 떠나고 노닥거리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네덜란드인이 생활 속에서 즐기고 있는 닉센과 같습니다.


"무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 번역할 수 있는 한자입니다. 노자의 도교에서 유래한 단어이자 문화라고 하겠습니다. '무위'를 염세적 수동적인 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위는 목적 없음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이것은 닉센과 비슷합니다.


"내면의 돼지 개를 꺼내다(den inneren Schweinehund auslassen)" 감을 잡으셨겠지만 독일어입니다. '어깨 위의 악마' '약하고 게으른 심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선택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면의 게으른 짐승을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생각 끄기 연습 103 ~ 107p 요약정리




닉센을 우리 말로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멍 때리기"가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식 닉센이라 부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멍하게 시간 보내는 사람을 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올가 메킹을 주장합니다. 오히려 멍하게 보내는 시간을 통해 삶의 질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올가 메킹은 닉센의 힘, 멍 때리기의 힘을 뇌 연구 결과로 보여줍니다. 사람의 뇌는 일을 할 때 특정 영역은 활동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리고 있을 때 사람의 뇌는 온갖 주요 연결망을 포함한 특별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뇌과학자 라이클은 이것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리고 있을 때 뇌는 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닉센이 기본 상태(Default Mode)이며 내면의 욕망이나 걱정, 돈 같은 외부 자극에 동기부여될 때 뇌의 특정 영역이 깨어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리고 있을 때 우리 뇌는 모든 일을 하는 셈입니다. 닉센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올가 메킹은 닉센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만 닉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닉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습니다. 닉센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닉센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이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우울증을 앓거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거나, 고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닉센이 효과를 발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닉센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스스로 제한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닉센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닉센이 몸에 붙어 있는 네덜란드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 네덜란드 여자가 우울하지 않은 이유를 닉센에서 찾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네덜란드 사람이 그렇게나 행복하게 사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나와 같은 경우엔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꼭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닉센은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닉센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멍 때리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어려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어렵다니... 스스로도 조금 놀랐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에 시달렸습니다. 낮 시간에 멍 때리고 있자니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라는 일종의 강박과 불안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올가 메킹은 친절하게 나와 같은 사람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루 10분 생각 끄기를 연습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올가 메킹은 네덜란드 사람이 일정표대로 움직이는 습관을 제안하며 닉센 시간을 일정표에 넣으라고 말합니다. 하루 일정에 멍 때리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두라는 이야기입니다. 매우 혁신적인 생각이자 시도해 볼 만한 제안입니다.




나는 매일 새벽 조용한 예배당에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시간이 멍 때리는 시간은 아닙니다. 이 시간을 나는 삶을 돌아보는 시간, 시끄러운 마음의 욕망을 잠재우는 시간, 잠잠히 나의 사랑 나의 하나님을 바라는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 시간을 닉센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습니다.


사실 나는 설교 준비(엄청난 양의 글쓰기 작업)를 하면서 종종 멍 때리는 시간, 딴짓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설교 준비가 막히거나 진도가 나가지 않거나 뭔가 지지부진할 때면 멍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보내거나, 전혀 다른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 후에 신기하게도 막혔던 부분이 술술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좀 더 명확한 닉센의 시간, 멍 때리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멍 때리기보단 다른 일을 하면서 뇌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유진 피터슨이 알려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작살꾼의 비유"입니다. 목사들의 목사라고 불리는 유진 피터슨은 설교자로서의 목사에게 작살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포경선의 목적은 고래를 잡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꾼은 정확하고 빠르게 작살을 던져야 합니다. 그가 실패하면 그 배의 목적이 실패하고,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의 목적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작살꾼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 햇볕 잘 드는 곳에 퍼질러 앉아 작살을 날카롭게 연마합니다. 일손이 부족해도 나서서 돕지 않습니다. 작살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작살만 만지작거립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낸 후 작살꾼은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을 던져 고래를 사냥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설교자가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내기 위해 다른 일로 지나치게 바빠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닉센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은 후 규칙적으로 하루 십분 닉센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의 뇌를 기본 모드로 돌아가게 하고 싶습니다. 뇌 구석구석 혈류를 흘려보내며 워밍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 후 내가 해야 할 일을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지도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삶을 조금 더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가 메킹의 말처럼 닉센을 시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쉽고, 만사가 행복하고, 절대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닉센을 통해 잠깐의 여유를 누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문장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닉센은 온전히 나로 있는 시간,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충전하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신경 끄기의 기술
저자: 마크 맨슨
출판: 갤리온
발매: 2017.10.27.

아무것도 하지 않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저자: 필립 들레름
출판: 장락
발매: 2000.01.15.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저자: 김현태
출판: 레몬북스
발매: 2018.12.20.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얻는 법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얻는 법
저자: 닐 파스리차
출판: 나무옆의자
발매: 2019.04.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