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 낯선 길 위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만나다 진로 쫌 아는 십대 2
서와(김예슬) 지음 / 풀빛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유학 때 아내와 미국 이곳저곳을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아내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텍사스 달라스는 미국 남부 한 가운데 자리잡은 도시여서 여기저기 방문하기 좋은 위치입니다. 말이 그렇지 달라스에서 서부 LA까지는 논스톱 25시간을 운전해야 하고, 뉴욕까지도 25시간을 논스톱으로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대륙입니다. 첫 여행은 Las Vegas와 그랜드 캐년이었습니다. 전체 일정은 7일이었습니다. 다음번 방학 여행은 같이 공부하던 전도사님 부부와 뉴 멕시코에 일주일 여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그 다음 여행은 세인트 루이스를 거쳐 시카고, Niagara Falls, 보스톤, 뉴욕, 워싱턴, 아틀랜타를 거쳐 달라스로 복귀하는 2주짜리 여정이었습니다 왕복하고 보니 8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거쳐 Rocky Mountain National Park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살던 LA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습니다. LA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Hawaii에 스탑바이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보니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여러 번의 길고 긴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갈등한 적도 많았습니다. 서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꼼꼼하고 계획적인 아내는 방문하기 전부터 여행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일단 가서 보자는 식이었습니다. 가다가 맘이 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운전대를 옮겨도 좋다는 식이었지요. 다툼이 없을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나를 더 알게 되었고, 아내는 아내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여행을 통해 나는 아내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아내도 나라는 사람을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준 깨달음이자 배움이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시선에서 보기에 아직은 어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걷는 길, 걸으려 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소녀를 만났습니다. 필명부터 서와(글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18세에 스스로 자신의 필명을 붙이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소녀, 이제는 어느새 20대 후반에 들어선 청년작가의 책입니다.






놀라웠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십대 청소년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속세에 해탈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생 아들딸을 기르기 때문에 더욱 크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해탈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신 분으로 보입니다. 자녀에게 너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그 길을 걸어가라고 등을 떠미는 부모라니... 천년기념물로 보입니다.


용장 아래 약졸없다는 말처럼 그 부모 아래서 자란 서와는 참 대단한 행보를 보여줍니다. 홈스쿨링을 시작한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법을 찾아냅니다. 서와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그간 가보지 않았던 곳을 걸으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자신의 삶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10 후반에 들어서는 '공감유랑'이란 이름의 버스를 타고 300일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습니다. 3명의 선생님과 18명의 학생으로 조직된 공동체입니다. 300일이란 긴 시간동안 숙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가는 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돈을 벌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다녔습니다. 때로는 공연을 준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논어를 배우고 고추장을 만들고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을 탐색해 나가더군요. 십대 후반에 말이에요.


20대가 되어서는 모든 순례자의 꿈의 장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800킬로를 걷는 여정에 올랐습니다(저자 서와는 여기서 조금 더 보태 대략 900킬로를 걷습니다). 이 길고 긴 시간을 홀로 걸으며 자신의 삶을 탐색하고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서로를 격려하는 법을 배우고, 음식을 해먹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 시간동안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삶의 방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산티아고를 걸으며 짐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서와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작은 가방이라도 길고 긴 순례길에 거추장스럽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짐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짐을 가볍게 했습니다. 달팽이처럼 자신이 지고 갈만한 짐만 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20대 중반에도 이르지 않은 청년이 얻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결국 서와는 낭만 쫌 아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농촌으로 들어가 농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에서 정직하게 수고하고 땀 흘리며 농사를 짓고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정성껏 기른 작물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더군요. 영농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변 어르신과 이웃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강차를 만들어 수익을 올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이 젊은 청년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담쟁이 인문학교의 정신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내공 가득한 문장으로 각인하듯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서와 작가의 진심을 담아낸 문장 몇 줄을 소개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청소년 친구들이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걸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171p


내가 바라는 삶을 찾아가는 여행은 

밥상을 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길 위에서 밥을 지어 먹으며 많은 길을 걸었고,

지금은 밭에 다녀와 식구들과 나누어 먹을 밥상을 차리고 있다. - 177p


농사지으며 밥을 짓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이따금 장터에 나가 농산물을 팔고, 

친구들을 만나 재미난 작당을 벌이고,

또 걷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고 싶지 않다.

한 줄 안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으니까.'

"학교 밖에 내가 찾을 수 있는 정답이 있을까?' 생각하던 나는,

정답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 178p

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중에서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이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누군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허둥거립니다. 자라는 자녀는 세상에 휩쓸리며 개성을 잃어버립니다.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부모가 시크는 대로,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성공의 필수요건이 된 것 같은 낯선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서와는 돌멩이 하나를 던졌습니다.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보여주었습니다. 이 파장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갈지, 얼마나 큰 파장으로 성장할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나도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라고 격려하고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지 않고,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아들딸이 되길 응원해야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아들딸과 함께 산티아고를 걸으며 삶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힘겨운 여정이겠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걷고 싶습니다. 그땐 나의 나이도 적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 체력관리에 신경 써야겠습니다. 나의 아들딸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십대 자녀를 두신 부모라면 자녀의 책상위에 슬그머니 올려두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즐거운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산티아고 어게인

산티아고 어게인
저자: 박재희
출판: 푸른향기
발매: 2021.07.09.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저자: 황승찬
출판: 바른북스
발매: 2021.05.04.

느긋하게 걸어라

느긋하게 걸어라
저자: 조이스 럽
출판: 복있는사람
발매: 2008.05.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