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사랑이 영혼의 사랑과 한데 섞이는 일은 지극히 드문일이다. 한 육체가 (아득한 옛날부터의,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그 움직임으로) 다른 육체와 결합하는 동안 영혼은 무엇을 하고있는 것일까? 그동안 영혼이 만들어내는 -그렇게 해서 육체적 삶의 단조로움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확실하게 하면서- 그 온갖 생각들이라니! 영혼은 또 한데 얽힌 두 육체보다도 천 배는 더 관능적인 상상의 구실로서만 (타인의 육체인 듯) 소용되는 자신의 육체에 대하여 얼마만한 경멸이 가능한가 아니면 그 반대이든가, 즉 영혼은 육체가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그 반복운동을 하도록 그저 내던져 두면서 육체를 격하시키고 자신은 (쉽게 변하는 육체의 쾌락에 벌써 싫증을 느끼며) 자기만의 생각과 더불어 멀리 사라져버리는 데 얼마나 능숙한가? 저 멀리 체스판으로, 어떤 점심식사의 기억으로, 또는 어떤 책으로. - P278

서로에게 낯선 두 육체가 한데 섞이는 것, 이것은 드물지 않다. 때로는 영혼의 결합까지 일어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육체가 자신의 영혼과 결합하고 일치를 이루어 정념을 공유하는 일은 천배 드문 일이다.
그러면 내 육체가 헬레나와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 내 영혼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P279

헬레나와 반대로 너무도 감미롭게 비물질적이며 추상적이고, 갈등이나 긴장, 극적인 것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루치에.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점성가들은 별들의 운행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런 식으로 그녀는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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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에서 그 여인을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 집요한 정신집중으로 그녀에게서 그녀 자체가 아닌 모든 것을 벗겨내려고, 그러니까 사랑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녀와 함께 겪은 그 사연을 다 없애버리려고 애쓰는 것은 어떤 추론의 오류를 범하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루치에도 오스트라바의 변두리가 없다면, 철조망 사이로 밀어넣어 주던 장미, 그녀의해진 옷, 희망 없던 내 오랜 기다림이 없다면, 내가 사랑했던루치에가 더 이상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일들을 이해했으며, 세월이가면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이 거의 두려워졌다. 루치에가 더 이상 루치에가 아닐 장소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때 나는 끊긴 실을 다시 이을 방도를 찾지 못하리라는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루치에를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그녀를 잊었다거나, 그녀의 이미지가희미하게 바래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녀는 밤이나 낮이나, 말없는 향수처럼,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것들을 열망하듯 그렇게 그녀를 원했다.
그리고 루치에는 내게 영원한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 (과거로서 영원히 살아 있고, 현재로서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점차로 그녀의 육체적, 물질적, 구체적 형태를 잃어갔고, 점점 양피지에 씌어진 어떤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이 되어 조그만 금속 상자에 숨겨져 내 인생의 저 깊은 곳에 놓여졌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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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연습을 하고 더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 주위에는 침묵 뿐이다. 나는 텅 빈 홀에 남아 있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이도록 명한 것이 꼭 루드빅이었던 것 같다.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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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를 실망시켰고, 그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인간이란 걸 잘 알기 때문에 난 동물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라고 그는 말했지만, 물론 아주 심각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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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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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신 없다는 핑계로 책을 통.. 못읽고 있는데
나름 정을 줬던 독서 모임에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길래 썼던 긴 글을 여기에 기록해 놓습니다..
북플 친구들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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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내서 공유했다고 하는데 반응이 처참하네요. 설마 독서를 위한 모임에서 이런 반응이 나올줄 몰랐는데요.. 독서를 하면 결국 만날 수 밖에 없는 주제인데. 이런 반응들 덕분에 이 책이 더 신성시 될 수 있었던 거라는 걸 다시금 실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예전에 1판 4쇄 찍을 때 쯔음 그때 하던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갓 나온 책이였고, 신간이였던지라 지금과 같이 이 책을 둘러싼 이슈들이 거의 없고 소소하게 입소문을 탔을 때 였어요.

1.
처음에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건, 문학적으로 문장이 와닿거나 마음을 울리거나 아름답거나 흥미진진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건데요..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문학도 비문학도 아닌 느낌. 문학으로서의 감동을 기대하며 읽었기 때문에 실망을 좀 했어요. 당연한 사실들을 나열한 건데, 이거 그냥 신문 기사나 논문으로 내면 되지 않아? 싶고, 저에게 독서는 어느정도 현실을 도피해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들로 가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더욱 내가 아는 세계의 나열이 지루했고요. 현실을 뒤트는 사캐즘도 없고.. 유쾌한 맛도 없고.

이 책은 기사와 통계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텐데요, 그러니 제가 느낀 것들은 좀 당연한 거 였다 싶어요.
여성들의 경험은 같지 않죠. 너무 큰 집합체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도 없고요. 오히려 저는 제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너무 미화한 건 아닌지 싶을 정도로 온건한 불행들만 예쁘게 담은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 후 이 책을 둘러싼 과격한 반응들을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어떤 집단이 평균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재배열했을 뿐인데 과장되었다거나 더 나아가서 과격한 반응이 있는 건, 차별이 은폐되어있다는 반증이겠죠. 차별은 겪는 사람들만이 피부로 느끼는 거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온건한 방법이였는데 말이예요.

어떤 예술도 가치중립적일수는 없죠. 자료조사를 통해 만들어졌더라도 ‘문학‘이니까요. 통계를 이용한 논문이 아니라요. (물론 논문도 완전히 가치중립적일 수 없고요)

그래서 논문을 인용했으면 달랐을까요? 문학의 형식을 가져왔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도 줄 수 있었고, 동시에 현실에 대한 객관성을 놓치 않았기 때문에 당대의 풍경을 착실히 담아낼 수 있었다고 봐요.

지금 <82년생 김지영>이 해외에서도 많이 판매가 되고, 좋은 평을 받고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어요. 한국의 현실을 보기도 하고, 각국의 현실의 비교하고 공유하기도 하면서요.

충분히 목적은 달성한거 아닐까요. 그것도 제가 처음에 와닿지 않았뎐 이유라고 말한 형식 덕분도 크다는 생각입니다.


2.
그러나 이런 말들을 어디 가서 쉽게 할 순 없었어요. 이 책을 옹호해서 모두가 싫어하는 그 ‘페미’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이 문장의 의도가 제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이 책의 개인적인 감상을 짧막하게 얘기해서, ‘역시 개념녀’로 받아들여지는 게 제겐 더 싫은 일이였기 때문에요 ㅋㅋ 제가 이 책을 ‘재미없다‘고 평했다면 그 때문은 아닐 텐데요. 그러나 거기까지 깊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으니까
결국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네요.

이 책을 악마화된 대명사로 입에 올리는 사람들 중에서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네요. 그런 반응들이 이 책을 성서로 만든 걸테고요. 이 책의 의도를 도와주는 반응이기도 하겠네요..





3.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은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고 그걸 신념으로 삼죠.
어떤 인권에 대해서라도, 소리내는 사람들을 보고 다 힘들게 산다고, 너만 힘든거 아니라고, 왜 저기에는 관심없으면서 여기에만 관심이 있냐고 함부로 말 많이 하시더라구요.

근데 그거 본인이 하시면 돼요. 나도 부조리 속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부조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 모난 말을 하는 건.. 조금 비겁한 일 같아요.







4.
여성인권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나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하는 거 그만 하고 싶고요
이 책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군요. 이 책이 여성인권을 옹호할 의도가 없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반문하고 싶네요.

저도 저의 의견에 여러 생각들을 듣는 것은 환영하나, ‘페미는 일베‘, ‘여성 할당제나 어떻게 해봐라’ 식의 비겁한 문장 따위에 논쟁할 가치는 없네요. 그것들이 나온 배경을 모르시진 않겠죠.

이 방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인증도 올라왔던걸로 기억하는데, 공격적인 반응에 놀랐네요.




5.
앞서 말했듯, 문학 자체로 재밌게 읽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남주 작가의 후속작인 ‘현남 오빠에게‘는 읽어보지 못해서 덧붙힐 말이 없습니다..


6.
개인적으로 빙의된 설정은 다른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적 설정인거 같은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요.

+ 여기에 대해 주인공이 너무 수동적이고 빙의와 정신병까지 오고가는 것에 대해 오히려 안티페미적이고 문학이 아니라 프로파간다라는 의견을 받았어요

여기에 대한 저의 의견: 님 의견에도 공감해요. 말했듯 이거 애매한 고난들을 예쁘게 담아 보기좋게 만든거 아닌가? 라는 생각 했다고 썼었죠. 그래서 책 자체로는 저도 좀 재미가 없었어요.. 문학이 아니라 프로파간다라는 말에도 공감하는 바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문학의 주인공이 될수없고 .. 대다수는 그냥 운명의 쓰나미에 몸을 맡기고 있고 현실의 불행은 선명하기보다는 애매하죠.. 그래서 그 현실적인 면 덕분에 많은 공감은 더 얻었다고 생각해요. 의견 감사합니다 재밌어요


7.
의견 내주신 분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의견 차이로 다투는 일은 유쾌하지 않잖아요. 제일 쉽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방에서 나가서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있는 곳으로 돌아가 한탄하는 거 겠죠. 냉소와 비꼼 없이 타인을 배려하며 의견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제 글로 누군가가 상처받았다면 미안해요.

저도 용기내서 얘기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서 두서없이 긴 글을 썼다는 사실을요. 부디 제가 견딜 수 있을 정도였으면 좋겠고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리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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