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황에서 그 여인을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 집요한 정신집중으로 그녀에게서 그녀 자체가 아닌 모든 것을 벗겨내려고, 그러니까 사랑에 형태를 부여하는, 그녀와 함께 겪은 그 사연을 다 없애버리려고 애쓰는 것은 어떤 추론의 오류를 범하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루치에도 오스트라바의 변두리가 없다면, 철조망 사이로 밀어넣어 주던 장미, 그녀의해진 옷, 희망 없던 내 오랜 기다림이 없다면, 내가 사랑했던루치에가 더 이상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일들을 이해했으며, 세월이가면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이 거의 두려워졌다. 루치에가 더 이상 루치에가 아닐 장소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때 나는 끊긴 실을 다시 이을 방도를 찾지 못하리라는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루치에를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그녀를 잊었다거나, 그녀의 이미지가희미하게 바래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녀는 밤이나 낮이나, 말없는 향수처럼,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것들을 열망하듯 그렇게 그녀를 원했다.
그리고 루치에는 내게 영원한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 (과거로서 영원히 살아 있고, 현재로서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점차로 그녀의 육체적, 물질적, 구체적 형태를 잃어갔고, 점점 양피지에 씌어진 어떤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이 되어 조그만 금속 상자에 숨겨져 내 인생의 저 깊은 곳에 놓여졌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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