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의 물리학 - 사소한 일상이 물리가 되는 즐거움
이기진 글.그림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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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에서 물리학은 항상 존재한다. 화학도 물리학에서 시작되었으니 빨래를 할때 물의 양이 일정한데 세재를 많이 넣는다고 빨래가 더 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만 물에 녹는 세재의 양은 정해져 있으니 굳이 많은 양을 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학창 시절 배웠던 물리학은 차의 속력을 계산하거나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커브를 돌때 전복되지 않으려면 경사각을 얼마를 설정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사실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 만으로는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학을 거쳐 하나의 제품으로 탄생했을때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물리학의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증기기관도 전기도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인문학보다는 상대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공학에 밀려 자연과학도 취업에 대한 이슈로 인기가 시들하다. 인기가 없는 이유중에 하나가 공대를 다니게 되면 1년을 과제에 시달리며 어려운 공학을 공부하고 계산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시험문제도 같은 한국어로 적여 있지만 전혀 유추가 불가능한 어려운 수식들도 가득차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학의 기본이 되는 수학이나 물리학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어렵기 때문에 공부하기 싫어하고 또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직장을 갖게 되어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도면 그리거나 어려운 계산 공식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물론 경제학과같은 인문학이라고 해도 쉬운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물리학에 대한 책들의 제목을 보면 쉽게 배우는, 영화에서 보는 등 아주 쉽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독자들을 유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양자역학이니 상대성 원리 등에 대해 논한다면 지적인 대화를 할때 뭔가 아는 척은 할 수 있지만 술자리에서 왕따를 당할수가 있다. 그래서 물리학 관련 베스트 셀러들은 일상에서 만날 수 았는 소소한 물리학 이야기들로 풀어나간다. 경제학이나 심리학도 마찬가지이지만 물리학도 자연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므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에 대해서만 늘어놓아도 책 한권 분량은 너끈히 채울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 생활에서 빠질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거나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나침판의 원리를 터득했다는 아인슈타인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 물리학이 어렵지 않다고 설득하면서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고 하는 이면에는 어려운 이야기는 쏙 빼고 쉬운 이야기만 들려주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짜피 물리학의 범위는 워낙 광범위 하므로 수업시간에 배운 어려운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할 얘기는 충분하니까 말이다.


  저자도 그런 점에 치중을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매 스토리마다 등장하는 로보트의 쓸데없는 이야기와 박사의 이야기는 왜 실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사족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쉬운 물리학 이야기만 실으려고 했는데 지면이 모자랄까봐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핑계로 실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지식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딜레마도 있다. 가령 비가 오는데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지하철 역까지 뛰는게 나을까? 아니면 차라리 걷는게 나을까? 혹자들은 같은 거리를 갔다면 뛰는 것이랑 걷는 것이랑 비를 맞는 양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가정이 존재한다. 내리는 비의 양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장마철인 요즘 쏟아지는 비의 양은 매순간 다르다. 스콜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하고 지겹도록 오래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동일한 양의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말 뛰는 것이 나은지 걷는 것이 나은지는 확실하지 않다. 책에서 말한대로 바닥에 있는 물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0% 물리학 만으로는 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점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답을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리학은 봉이 아니고 그렇다고 만능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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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읽는 친절한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김진연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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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많은 과목을 배웠지만 가장 흥미없는 과목이 사회였고 그중에서 세계사와 지리였다. 학력고사라 불리던 다시 대입시험에 포함되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암기할 것이 많아서 노력대비 좋은 점수를 받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세계사를 암기 과목의 대명사라 불렀다. 그와 마찬가지로 국사도 대표적인 암기과목이었는데 시험에 포함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년도와 인물에 대해 달달 외워야만 했다. 문제는 세계사와 국사가 과목이 다르다보니 당연히 선생님도 달랐고 자연스레 둘 사이의 연계관계가 없었다. 그나마 년도를 외우고 있으니 세계사의 격변기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끼워맞추어 볼 수는 있었다. 세계사에서 주로 시험에 나오는 과목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보니 1,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아마도 가장 크게 다루지 않았나싶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전쟁도 아니고 겪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참혹한 전쟁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히고 전쟁이 끝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임진왜란이나 6.25 전쟁도 그에 못지 않게 비참했지만 말이다.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주로 유럽의 역사에 대해 다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의 이웃나라이니 국사를 배우면서 함께 배운적이 많았다. 고구려를 침범한 수나라를 통쾌하게 물리쳤지만 당나라에 멸망하게 되었고 후에도 계속 중국의 침략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고전인 초한지는 읽어봤어도 그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세계사와 한국사를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양에서는 국사나 세계사라는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았고 또 왕가들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키다보니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의 역사라고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세계사를 이야기할때 우리의 이야기는 쏙 빠져있을까? 유렵여행이 여자들의 로망이라고는 하지만 휴가때 자주 찾아가는 동남아시아들도 세계사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인도나 필리핀은 자주 등장하는데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기에 그런 것은 아닐가 싶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낮추고 세계사 속에 감히 명함을 내밀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미 신라시대때부터 아랍의 상인들과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하였고 고려라는 이름도 널리 알리지 않았던가? 천재적인 화가 피카소의 작품에도 6.25가 배경으로 나온다. 물론 이런 동족상잔의 비극이 자랑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계사는 워낙 범위가 방대하여 한두권으로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웃나라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소개하지 않더라도 책 10권은 훌쩍 넘어가버린다. 세계사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 것이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다보니 이름과 지명도 익숙하지 않고 동시대를 논하더라도 방대하기에 하나를 알아도 또 다른 나라의 역사는 제대로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세계사를 한권으로 대략적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전체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전개하거나 중요한 사건만 집고 넘어갈 수도 있다. 자칫하다간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 저자는 나름대로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리고 이미 세계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그동안 알고 있는 지식을 줄거리 위주로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 공부하던 문제집의 요약본 정도라고 할까? 그러다보니 책을 통해 뭔가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시험치기 전에 알고 있는 지식을 정리하던 자세로 그때는 그랬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아프리카는 민족간에 분쟁이 심하며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평화롭던 아프리카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이 유럽인들인데 유니세프니 하는 자원봉사단체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애당초 인간의 과욕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시절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런 욕심이 없었더라면 진화는 훨씬 늦춰졌을 것이며 어쩌면 동물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이는 역사에 대해 논할 수가 없다. 수많은 가정들이 있었기에 역사를 배경으로한 소설들도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대해 논할때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야 하는 국가나 사건은 무엇일까? 인류의 발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국가라야 할까? 아무래도 지금의 강대국을 무시할 수는 없나보다. 역사는 짧지만 - 정확하게는 백인의 역사는 짧지만 - 근현대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미국이 빠질 수는 없다. 1,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군수물자 수출로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간 미국. 만약 그런 전쟁이 없었더라면 어떻했을까? 정말로 그런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기 않았을까?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쉽사리 세월속에 뭍혀버렸을지도 모르니말이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사대주의 사상에 사로잡혀 있은 것은 아닐까? 이미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이라 부르고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서 세계최고의 박물관을 보유한 국가들을 보면서 우리는 부러워해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약탈의나라라고 손가락질을 해야할까? 신채호 선생깨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셨다. 오랜 역사속에서 그때 이랬어야 하는데 혹은 그때 이랬더라면 우리의 역사도 달라졌을텐데라고 한탄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역사를 잊지말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권으로 압축한 역사서에 이름을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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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 세계 최고 10대 이공계 대학 탐사 프로젝트
설성인 지음 / 다산4.0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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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이 1년 조금 넘은 듯하다. 국내에서는 스마트팩토리 2.0으로도 불리고 4차 산업혁명보다 Industry 4.0이라는 말로 먼저 접했다. 제조업과 관련된 IT업에 일하다보니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도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 다가왔다. 4차 산업혁명은 IoT, Cloud, Big Data, AI 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제조업에만 국한되어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산업혁명을 이끈 주역은 과학자나 공학자가 주를 이루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소위 말하는 이과생들이 기술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에 생각의 한계가 있을수도 있지만 문과생들은 오히려 생각의 장벽이 없을수도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를 보았듯이 기술력으로는 못할 것이 없다. 현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보다 어떤 것을 구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4차 산업혁명이 원하는 인재가 명문대에 진학하여 과업을 충실히 완수하는 학생들일까? 물론 그런 엘리트들도 필요로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인재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의 제목은 4차 산업혁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를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책에서는 마치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졸업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릴적부터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해서 졸업을 해야만 한다. 책에서 말하는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직접 가보지 않고 책에서 소개된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다. 지방 국립대를 나와서 흔히 대기업이라 부르는 회사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넘사벽처럼 느껴진다. 지금에 와서 내가 공부를 해서 명문 이공계 대학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위 0.1% 만이 가능한 대학에 우리 아이들이 가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면 책의 독자층은 아주 한정되지 않을까 싶다. 최소 상위 1%에 머물면서 어느 대학을 가야할지 고민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아닐까 싶다. 세계 10대 이공계 대학에서는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으니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대학을 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칼텍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MIT에서 짖궃은 장난을 했다거나 칭화대와 베이징대에서 서로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책을 읽고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일깨워주기보다 그저 한번 스쳐지나가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파악하는게 급선무가 아닐까싶다. 나 자신도 한때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겠노라 다짐했으나 공학도는 그나마 사정이 좋지만 자연과학의 경우 정말 배고픈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과감히 그 길을 접었다. 취업준비에만 연연하고 취업이 잘되는 학과만 선호한다고 우려하지만 사실 먹고 살지못하면 배워서 뭣하겠는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허생전을 봐도 허생원에게 부인이 돈을 못 벌어오다고 타박하지 않는가? 청년 실업률 사상최고, 낮은 출생률 등등을 문제삼으면서 이공계 기피현상이니 다들 취업에만 매달린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생계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먼저 갖추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학생들을 이공계 인재가 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직장에서도 이공계 출신보다는 인문계 출신 인재들이 자리잡고 있는 보직이 더 높아보이고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이공계를 기피하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을 제대로 하지 않고 최고의 이공계 인재만 알아주는 사회풍토가 문제가 아니겠는가? 마치 명문대에서 이공계를 전공해야만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재가 되는 것처럼 책에서도 떠벌리고 있으니 이런 0.1%가 못될 것을 미리부터 짐작하고 미리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겠는가?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대학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한 저자의 노력은 높이산다. 일선에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인재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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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답이 없는 시대 홍종우와 김옥균이 꿈꾼 다른 나라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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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균하면 삼일천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처음으로 김옥균이라는 인물에 대해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시절 위인전기 부록에서 조선시대 말기의 풍운아라는 소개와 함께 수페이지에 달하는 간략한 인물소개였다. 갑신정변을 일의켜서 정권을 잡았고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을 회생시키기 위한 최후의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뼈대 있는 안동김씨의 자손으로 태어나 당시에 출세가도가 앞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무엇때문에 그토록 무모한 시도를 하였던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고 무너져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불꽃을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내가 든든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남의 힘을 업고 무엇인가 시도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일본의 힘을 이용해 부국강병을 꾀했지만 복잡한 국제 관계에서 쉽사리 남의 나라를 도와주려고 나서는 나라가 있겠는가? 일본의 소극적인 대응과 청의 간섭으로 갑신정변은 3일만에 끝나고 말았지만 그 여파는 너무나 컸을 것이다. 어쩌다가 국가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이유야 어떻든 조선시대 후기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최후의 수단으로 그는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역성혁명이었는지 아니면 정권장악이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정권을 장악할 든든한 백도 없는 상황에서 그토록 무모한 정변을 일의킨 것을 보면 준비가 없었던 것 같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반란이 있었는데 성공하여 나라를 세우고 결국 왕권을 교체한 경우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혁명이나 반란은 실패를 하였다. 하지만 오죽하였으면 그토록 무모한 시도를 하면서도 정변을 일의키려고 하였겠는가? 책에서는 김옥균이라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홍종우에 대해 주로 다룬다. 강대국의 틈에 끼어서 청에 의존하였다가 일본편에 섰다가 러시아 편에 서는 박쥐같은 행태를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임금이라 불리는 고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라의 힘이 없다보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의 안위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하다보니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썩어빠진 지배층 때문에 나라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지고 백성들은 더욱 힘들수 밖에 없었다. 역사를 보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해 나락으로 추락한 경우가 많았다. 몽골 침입때도 그랬고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경우도 명분을 내세우며 애써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결과 왕은 치욕을 겪었고 백성들은 고초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사드 배치를 하고 그에 대한 경제 보복이니 한국산 불매 운동을 하는 현 시점의 국제 정세를 보면서 책의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 시절에는 우리의 힘도 없었고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에 올랐고 그 시절보다 국방력과 경제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대 망상에 빠져서도 안되고 강대국이 틈 바구니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그런 외교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역사책을 한번이라도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절대 저런 판단을 결코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판단을 내린다. 혹은 조선시대에 무능력한 임금들이 무리한 토목공사를 하여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다가 수많은 민란이 발생하였고 심한 경우 왕위에서 쫓겨난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국민의 혈세를 불필요한 토목공사에 낭비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외교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조선시대 후기 정답이 없는 시대라고 저자가 말을 하는데 지금도 크게 다를바가 없다고 보는이들이 많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되었겠는가? 홍종우와 김옥균이라는 두 인물이 나라를 일의키기 위해 노력한 위대한 영웅인지 아니면 시대의 반역자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분명 백성을 위해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했음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면에서보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과는 분명 달라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그리고 든든한 백도 없이 외세의 힘을 빌려서 정변을 일의키고 나라를 개혁하려고 한점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나의 힘이 아니라 전적으로 남의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질 것은 뻔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김옥균은 왜 갑신정변을 계획했을까? 내가 그 시절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시대를 잘못 읽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데 오판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비록 삼일천하로 끝났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상당히 크다고 본다. 그런데 만약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긑나지 않고 그의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우리 나라는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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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인테리어 - 주택.아파트.사무실.공간, 풍수의 대가 고제희 원장이 제안한
고제희 지음 / 문예마당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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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던 시절 수년쯤전에 우연히 재테크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풍수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도 풍수라는게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런게 있었나 싶었다. 가령 거실에 어항이 있으면 집안에 돈이 모인다거나 입구에 큰 거울이 있으면 거울에 반사되어 복이 나간다는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그럴싸한 내용부터 지갑을 식탁위에 아무렇게나 두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돈은 아무렇게나 두는 것이 아니라 지갑속에 넣어두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만약 남의 집에 방문하거나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지갑이 놓여있다면 남들 보기에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묘자리를 쓸때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풍수에 밝은 사람을 모셔서 명당을 찾아서 조상을 제대로 모시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얘기다. 물론 혹자는 말도 안되는 미신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옛부터 기를 중시한 동양에서는 풍수를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몸과 우주의 기운을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풍수가 아닌가 싶다. 과거 이건희 회장도 인재를 채용할때 관상을 봤고 전국의 명당자리에 빌딩을 올리지 않았던가.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를 보고 풍수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기가 세고 명당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하면 그러한 역경을 딪고 일어섰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가족들은 대체로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도 관련이 되어 있는데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 같아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운동 선수들중에 개명을 하고나서 성적이 훨씬 좋아진 경우도 있는데 역시 무시할 수 없나보다. 이름을 부를때 한자로 뜻도 중요하지만 활기찬 이름은 부르기에도 좋고 뭔가 뭔가 긍정적인 힘을 실어준다는 느낌도 들기 마련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항상 긍정적인 말을 계속하다보면 일도 잘 풀리는데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살다보면 인생도 우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집을 지을때 배산임수를 고려하였는데 요즘은 그런 것보다 학군이나 주변 편의 시설을 더 고려하는 것 같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한정되어 있고 인구도 많이 늘었고 집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많아 과거처럼 풍수를 많이 반영하지 않지만 최소한 금기해야할 사항들은 다분히 있기 마련이다. 책에서 소개된 금기시하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들어 알고 있는 것들도 많다. 가령 안방이나 화장실이 입구에서 바로 보이면 좋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집이란 아무래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야 하는 곳인데 너무 개방되어 있으면 나의 공간이 누군가에게 노출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동물들도 나무속이나 땅속에 집을 짓는 이유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사무실 같은 경우도 온사방이 창문으로 되어 있다면 사람이 야생에서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기에 블라인드나 커튼으로 가리는 것도 같은 이유이리라. 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은 어떤지 계속 비교를 하였다. 이미 살고 있는 집을 뜯어서 화장실이나 안방 위치를 바꿀수는 없지만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한대로 큰 거울은 입구에 두지는 않았지만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보이는 구조이다. 주방은 신발장이 가리고 있어 어느정도 보완은 되지만 반대쪽인 거실의 경우는 문만 열면 바로 보인다. 잠을 자는 안방과 작은 방은 보이지 않지만 거실은 문만 열면 바로 보이는 구조라 가끔씩 거슬리곤 했다. 게다가 외부의 찬 기운이 바로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데 다른 방안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중문을 설치하는게 최적의 해결책이지만 어렵다면 책장이나 커튼으로 벽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한 내용을 곧이 곧대로 따라하거나 책 한권만 읽고 풍수지리에 대해 달관한 듯 행동하는 것은 좋지 못하지만 최소한 금기시 하는 내용에 대해 한번 더 살펴보고 타당한 이유를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풍수에서 금기시하는 것이 무턱대고 금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와 기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꿈자리가 뒤숭숭한데 밑져야 본전이니 책에서 시키는 것처럼 오늘부터 잠을 자는 방향을 바꿔봐야겠다. 그렇다보면 나에게 맞는 최적의 방안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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