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적 공감을 위한 서양 미술사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미술의 모든 것
박홍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 중 하나가 미술이었다. 예체능계에 취약하다보니 미술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암기과목도 아닌데 외워야 할 것도 제법있었는데 쉽게 외울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아무 생각없이 추상파, 표현파, 입체파 이러면서 암기를 하였는데 그런 미술학파들이 주장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리 만무했다. 물론 역사서에 나오는 이기론, 주기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말이다. 이렇듯 어렵게 미술을 대하다보니 왜 미술을 공부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세계사를 아무 의미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비너스의 조각이 왜 유명하며 최후의 만찬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발견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늘어가면서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구석시 시대 당장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는데 한가롭게 동굴에 벽화나 그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목축도 하고 경작을 하다보니 의식주에 대해서는 상당히 여유가 있지만 - 물론 아직도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지만 - 구석시 시대에는 동물들과 다름없이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오늘 하루 사냥을 하지 못하면 하루를 굶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사냥을 잘 되게 해달라고 신께 빈다는 것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앙이나 종교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동굴 벽화에 동물의 모습을 그릴 생각을 하였을까? 이런 동굴 벽화를 보면서 당시의 시대상이나 살았던 동물의 모습, 그리고 지형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단순하게 그렸다. 아마도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그릴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그저 사냥을 많이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주술적 의미라면 그렇지 않았을까? 물론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흘러 정착을 하고 국가가 성립되면서 미술도 발전을 한 듯하다. 역사시간에 배웠던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거칠때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었는지 문명이 발달하면서 미술도 급속도로 발전을 하는 듯하다. 동물을 주로 그린 벽화에서 바위나 대리석 등에 신을 조각하거나 벽화에 다양한 염료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들 작품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조각상을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조각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서양에는 대리석이 많아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보다는 조각 작품을 남기기 유리하였을 것이다. 책의 제목에 서양 미술이 들어가니 우리의 위대한 유산인 불국사나 석굴암 등에 대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논외로 해야겠다. 다소 조각하기에 유리한 조건도 있고 유화의 특성상 덧칠하기도 쉬워 동양의 수묵화보다는 정교하게 그리기가 유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큰 벽에 전체적이 구도를 잡고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력과 소질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줄자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할 수도 없고 전체적인 모습을 스케치를 할 수도 없었기에 오로지 화가의 머리속에서 구상한 대로 그려야 했을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유독 신에 대한 작품이 많고 인간은 신을 모시기 위한 하나의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릴적 몇번씩 가봤던 교회에 가면 인간이 죄를 지었지에 평생 죄를 뉘우치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암흑의 중세 시대가 지나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하면서 신 대신 인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그 배경에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있지만 미술작품을 보면 이렇게 시대가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서양 미술을 보게 되면 역사에 대해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역사를 알고 미술을 보게 되면 서로 매치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배경 지식이 전혀 없이 미술 작품을 보게되면 그저 '잘 그렸네'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도 그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이게 어떻다는 거냐?' 외에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유명한 천재화가 피카소의 작품도 처음에 봤을때는 도무지 무엇을 나타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피카소를 입체파라고 하는데 왜 입체파라 불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면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피카소는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어 그림자나 원근법 등을 이용해 충분히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마치 정면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에 좌우측 측면을 함께 표현하려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볼때는 마치 괴상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림을 통해서 전쟁의 참혹성이나 양민 학살 등에 대해 고발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저 그림을 입체감있게 혹은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쉽게 할 수도 있지만 남들이 한번도 그려보지 못한 작품을 혼자만의 시각으로 새로게 그린다는 것은 여간한 창의성이 아니고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미술도 점차 변하고 있는 듯히다. 내가 아는 대부부의 거장들은 살아 생전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죽고나서야 수십억에서 수천억씩 하는 고가의 미술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와 같은 천재 화가는 살아 생전에 충분한 대접을 받았지만 말이다. 사진 기술도 발달하고 예전과 달리 작품성보다 경제성이나 상업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걸작보다 요즘은 캐릭터와 같은 작품이 더 인기를 끄는 듯하다. 이것 역시 오랜 세월이 지나서보면 미술 작품의 변천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