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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 - 우리가 몰랐던 제갈량의 본모습을 마주해보는 시간
류종민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10월
평점 :
제갈량은 삼국지의 수많은 캐릭터 중 가장 인기있고 비중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악인 포지션이었다가 최근 들어 새롭게 재평가 받고 있는 조조 같은 인물이나, 조운이나 관우, 여포 같은 시대의 명장들도 인기가 많지만 역시 전통의 강호는 제갈량이 아닐까 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당시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촉한의 유비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세부분으로 초반은 유비가 거병하여 이리저리 떠돌며 쩌리 취급을 받는 이야기고, 중반부는 그런 유비가 제갈량공명을 얻고서 승승장구하며 촉을 세우고 천하삼분지계를 이루는 내용이며, 마지막 후반부는 유비가 죽은 이후 제갈량 혼자 남만을 정벌하고 위나라를 치기 위해 출사표를 내고 여기저기 싸우고 다니는 이야기로 나뉜다. 말하자면 중반까지의 주인공은 유비지만 중후반의 사실상의 찐주는 제갈량인 것이다.
제갈량은 삼국지 게임에서 지력 100을 단 한번도 놓친적이 없는 삼국지 세계관 최고의 지력왕 지략가이고, 적의 계략을 손바닥보듯 보고 적의 움직임을 모두 완벽하게 예상하며 신출귀몰한 계책으로 적을 물리치는 병법가이자, 제사를 지내서 동남풍을 부르거나 수명을 늘리고 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등의 신묘한 주술을 부리는 신선과 같은 포지션에 있다. 삼국지에는 제갈량 외에도 지능 높은 똑똑이들이 많이 있지만 유독 제갈량만이 이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단순히 머리만 좋은게 아니라 이런 신출귀몰한 계책과 신묘한 신통력을 보여주고, 멘탈을 흔드는 심리전에도 능통하고, 뛰어난 행정가에다가, 가무에 능하며, 어디가서 말로는 지지 않는 말빨을 지녔으며 끝없는 충성심과 청렴한 성품을 지닌 만능형 기믹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제갈량의 이런 캐릭터는 나관중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이 많다. 연의에서는 초야에 묻혀 고고한 선비처럼 살다가 유비에게 스카웃되어 등판한 후 거칠것없이 중원을 주무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가혹한 인생의 고난과 역경, 좌절을 겪었고,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고뇌와 걱정을 안고 살았다고 한다. 소설과는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다. [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는 소설에 의해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역사서에 기록된 제갈량의 실제 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50개의 흥미로운 주제로 살펴보며 신화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실제 모습을 고찰하고,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 실제로 정사충 중에는 제갈량이 거품이라고 역으로 박하게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 책으로 실제 제갈량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책은 총 6파트로 되어 있는데 파트1은 출생부터 유비에게 임관하기 전까지로 말하자면 제갈량이 본격적으로 소설에 등장하기 전의 스토리이다. 파트2와 3은 각각 유비에게 임관한 후부터 적벽대전까지, 유비의 익주정벌부터 이릉대전 발발 전까지의 이야기로 이때가 신출귀몰하고 신묘한 모습을 보였던 제갈량의 가장 전성기이자 소설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파트4 이릉대전 발발부터 사망까지는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 혼자 동분서주하며 촉을 이어가던 시기의 이야기고 파트5의 제갈량 사후부터 촉의 멸망까지의 이야기는 연의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내용인데 일반적으로 연의는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끝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이 접하지 못했던 제갈량 사후의 촉의 상황을 다루고 있어서 파트1과 함께 새로운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트6은 제갈량에 대한 후세의 평가와 일화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좋아하지만 연의 위주로만 알고 있어서 실제 제갈량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제갈량이 상당히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양친이 모두 죽어서 숙부의 손에 길러졌고, 13~4살 무렵 그러니까 초6중1 시절에 그 유명한 조조의 서주대학살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난세라고는 해도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다. 연의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인 완성형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이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제갈량만이 특별히 더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데 어쨌건 그런 상황에서도 학문에 힘써서 자수성가했으니 난인물이긴 하다.
연의 속에서 제갈량은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며, 상대를 띄워주고, 자중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런데 청년 시절의 제갈량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과했다고 한다. 연의만 봐온 연의충으로서 제갈량에게 그런 면이 있다니 의외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제갈량은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했는데 말하자면 자신이 문무의 능력을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인물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던 것이다. 이런 사람은 굉장히 비호감 캐릭터가 되는데 실제 기록에서도 당시 주위 사람들은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고 한 것으로 봐서 제갈량도 주위로부터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나대면 안된다. 그런데 제갈량이 그렇게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유하고 다녔던 것은 벼슬을 얻기 위해 마케팅의 일환으로 계속 홍보를 한 것이라는 설도 있는 것 같다.
책에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앞서 얘기한 제갈량의 유년기와 청년시절의 이야기처럼 전혀 모르던 내용을 알게 된 것도 재미있지만 평소 연의를 읽으면서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실제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도 매우 재미있다. 가령 제갈량은 유비의 삼고초려로 유비 휘하에 들어가서 유비를 도운 이후로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은 아마 삼국지를 읽다보면 한번쯤 하게 될 것이다. 만약 유비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모를까 촉은 한번도 위나라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히 깨졌고, 유비는 세번이나 제갈량을 청할 정도로 제갈량에게 매달렸지만 막상 제갈량의 말을 지지리도 안 듣고 매번 자기 멋대로 하다가 위기를 몰고 오더니 마지막엔 결국 이릉에서 나라를 말아먹고는 뒷일을 부탁한다며 아둔한 아들까지 떠안겨버렸으니 제갈량의 심정이 얼마나 짜증났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제갈량이 한 번도 유비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궁금했던 건 제갈량의 형 제갈근이 이미 오나라에서 고위 공직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은 왜 오나라가 아니라 유비한테 갔을까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과거시험 같은 형태로 임관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에 의해 인재를 천거하고 등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제갈량 정도 되는 인재라면 충분히 천거해서 오나라로 불러들일 수 있었음에도 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일까? 제갈근이 안 불렀던 것일지 제갈량이 안 간다고 한 것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아마 두 형제가 서로의 인생에 터치하지 않는 관계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좋게 말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형제애가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사료에도 그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갈량과 제갈근은 애초에 형제애가 없어 공적으로 마주치게 될 때에도 형제간의 반가움을 드러내지 않는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고 보는게 맞겠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촉의 물량을 탈탈 털어 이릉으로 치고 들어가는데 그 무리한 원정을 제갈량은 왜 말리지 않았던 것일까? 실제로 촉나라의 기세는 이때 확 꺾여버리고 유비도 이 이릉전투로 인해 사망하게 되는데 제갈량이라면 이런 결말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고 당연히 유비를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정사에는 조운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말렸지만 유비가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제갈량은 이와 관련해 찬성이건 반대건 별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발언권이 강한 제갈량이 말렸어야 하는데 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형 제갈근 때문으로 추측한다. 오나라 여몽이 관우를 죽일 때 제갈근이 토벌군에 참여했었고 그러한 사실이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제갈량이 동오를 치러 가는 것에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연의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제갈량. 그 때문에 연의가 재미있고 스토리가 풍성해지지만 제갈량은 너무 신격화되고 신화화되버려서 실제 인간 제갈량의 모습은 가려지게 된다. 소설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 속의 모습이 아니라 역사 속의 실제 모습을 봐야지 제갈량이란 불세출의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허구의 거품을 걷어내고 제갈량의 인간적인 본모습을 마주하는 것으로 삼국지의 이야기와 제갈량이란 인물이 새롭게 다가온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