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건강검진을 하러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가야하니 적어도 10시 이후에는 금식을 해야한다. 직장인종합검진은 흔히 병원에서는 눈먼돈이라고 한다는데, 기실 제대로된 검사는 다 빠지고 돈에 맞춰 코스만 죽 늘어놓은 한정식요리같다.
건우에게 사주기로 약속한 시디가 있어 택견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와 서둘러 인터넸을 검색하는 사이 건너방에선 오랫만에 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아빠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한참후 아이들 둘다 건너가 자라하고 볼만한 책들을 검색하고 있는 사이 뜬금없이 건우아빠가 한마디하고간다.
건우아빠: 연우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좀 있는것 같아
나:(놀라서)뭐라구?
건우아빠: 좀더 캐물어봐야겠지만 친한친구는 두어명뿐이고 다른애들하고는 잘 안노는 모양이야..
나:연우가 약간 왕따같은거란 얘기야?
건우아빠: 글쎄... 어쨌든 또래랑 어울리는게 원활하지 못하다면 뭐 좀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그리고나선 저녁에 걸친 반주탓인지 더 자세히 얘길 해보라고 해도 그냥 내쳐 잠이 들어 버린다.
아이아빠가 그렇게 잠이 들어버리니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든다. 연우는 제오빠가 다닌 유치원을 오빠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건우는 두살때부터였고 연우는 네살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이다.
사실 건우가 워낙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대장이었고 학교에서도 회장노릇을 하며 잘적응해주어서 연우도 으례 그러려니 생각해 왔다. 건우가 워낙에 유치원에서 대표노릇을 해 연우는 유치원에 들어가기전부터 선생님이나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건우동생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터라 더구나 걱정이라곤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연우의 독서량이 가끔 황당할정도로 늘어나 있는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저 좋아라했던것이 최근에는 문득 막연한 불안감이 되어 머리속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얼마전에는 미하엘엔데의 끝없는이야기합본호를 거의 다 읽고 있는 것을보고 책을 치워놓았더니 어디있는지 한참을 찾는 눈치였다.
연우의 나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독서가 지나치게 조숙한 아이를 만들어 유치원에서 또래집단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발생하는건 아닌지 막연히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아빠가 저렇게 불안에 불을 질러놓고는 혼자만 내쳐 잠을 자버리니 갑자기 꼬집어서라도 자는이를 일으켜 세워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게다가 연우는 기본성격이 좀 내성적인편인데 아이아빠의 말로는 평소에 내가 어른도 지키기어려운 과도한 도덕적수준을 아이에게 요구하는 편이라니...
갑자기 실상을 확인한것도 아니건만 벌써부터 왕따의 주범이라도 된듯 불안감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마도 이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면 기어코 연우담임과 상담을 하고야 말았으리라...
사실 집에서도 연우가 유난히 책에 빠져 혼자노는걸 좋아하고 나도 평소 이웃집에 다니는걸 즐기지 않아 친구들과 어울리는건 주로 유치원에서뿐인지라, 전부터 은근히 우려를 해 왔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래도 내일 건강검진을 스피디하게 끝내고 막간을 이용하여 면담을 하고 와야 할 모양이다.
하나도 아니건만 아이키우는 일은 날마다 어렵고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