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0 "내는….. 바이킹 같이 타줄 사람이 좋다." (진아)
바이킹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줄 사람. 그래서 몸이 앞으로 쏠리지 않도록 서로 붙잡아 주면서 만세도 같이 부를 사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널을 뛰는 게 실은 우리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속삭여 줄 사람…
P173 속이 답답했다. 도로시와 토토를 날려버린 캔자스의 토네이도가 진주시 어느 하숙집 골목도 휩쓸고 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봤다 한다. -중략- 이건 음모다! 이 세상에 지금껏 내가 몰랐던 거대한 음모가 있는게 틀림없다. -중략-
세상에는 어떤 비밀 단체가 있다. 이 단체의 첫번째 강령은 ‘좋게 좋게 사건을 덮어라.’ 라는 것이며, 이 단체가 하는 일은 진실을 규명하는 게 얼마나 지난하고 피곤한 일인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세뇌시키는 것이다. 끝까지 세뇌당하지 않고 사건을 파헤치려는 자들에겐 모종의 보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P174 지하실 사건이 벌어지던 밤, 나는 물리의 도움으로 신우가 나만의 환상이라는 걸 확실히 자각했다.
내가 신우에게 반응하지 않으면 신우는 나 외의 사람들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었다.
P175 나를 뼛속까지 이해하는 사람이 신우 뿐이라면, 설사 환상이라 해도 그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숨이 막히고 누구 하나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이 진짜인지,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여도 나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품어주는 신우가 진짜인지, 나는 그 물음에 답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P179 나는 혼자였고 골목은 컴컴했지만 외롭지 않았다. 내겐 동네 친구가 있으니까,
생텍쥐베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내게 이 허름한 동네가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핑크색 캐롤 잠옷을 입은 물리가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무모하고 불온해지기, 갈데까지 가보기, 나는 원래 인애 파일의 공유자였다. 그 말은 내게 원래 파트너가 있었다는 뜻이다.
P182 지구의 역사에도 빙하기와 간빙기가 갈마든다. 그러니 한 인간의 시간도 시기마다 결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인애의 경우엔 그 시간이 생각기와 수다기로 나뉠 뿐이다.
P187 "그라믄 이라고 있지 말고 발로 뛰댕김시로 확인해 봐라. 총무말만 믿지 말고, 그 인간이 말한게 사실인지 하나하나 따져 보란 말이다." (진아)
P190 하여튼 우린 한배를 탄 사이, 한 캐롤카를 탄 사이가 되었다.
P198 "아줌마 (꽃년이)는 참 게으른 사람 같십니더,
내는 아줌마 젊었을 적 얼굴이랑 닮은 것 같다는 말 한마디에 이리 아줌마를 찾아나섰는데, 혹시나 아줌마가 내를 알까해서 말입니더.
그란데 아줌마는 참말로 미련하고 더럽고 못됐십니더." (진아)
P208 내가 까발려 버린 물리 민낮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적당히 꾸민 모습, 고등학교 선생이라는 배역에 걸맞은 외양을 원했던 거다.
P209 "샘은 어벤져스다.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그 딴거 다 힙친 캐릭터다. 다 되니까, 상담되지, 득달같이 달리오지, 차 있지, 운전 잘 하지…" (진아)
P220 마을회관으로 들어갔다. 나는 감진 마을 박진아가 꽃년이를 찾더라는 얘기를 장터 곳곳에 뿌려두었다.
그 말들이 또 이렇듯 실체화되었다.
P231 엄마와 동네 노인들이 꽃년이를 왜 쫓아내지 않았는지 알것 같았다. 그건 그들이 더러운 포대기에 싸인 갓난 아기를 내치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열일곱해 전에 나를 안아 올려 박도열씨네 안방에 뉘어 주었던 저들의 진심을 알고 있다. 내가 찾아낸 꽃년이를 저들은 마을회관에 뉘어 놓았다. 열일곱해 전에 내가 겪은 기적이 꽃년이에게서 재생되고 있었다.
P236 암환자는 종양을 때어 내야 하고, 나는 신우의 환상을 떼어 내야 하는 거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는 가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