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0 역사이해라는 것은 자기를 뜻있는 발전으로 보는 세계의 체계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 돌아보고 들여다보고 내려다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P31 역사는 그와 달리, 전에 가본 일이 없는 미래의 처녀림을 열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새로 이해를 해야 한다. 역사의 되풀이라는 것은 그 걸음이 더디던 때에 길을 아니보고 바퀴를 보고 한말이다.
P35 바퀴는 석가, 공자가 돌리던 그 인생의 바퀴지만, 역사의 길은 도저히 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데로 가고 있다. 바퀴도 그 바퀴가 아니다. 지금 심리학, 생리학, 사회학의 발달로 정신, 양심, 인격, 생명, 도덕 이런것에 대한 생각은 매우 달라졌다.
보편적 세계 사상의 결핍, 이것이 현대가 당하는 비참의 원인이다. 지금 핵무기의 실험 같은 것은 그 한 가지이다. 이 때문에 문명의 날카로운 기계가 도리어 인류가 자살하는 면모가 되지 않냐 하는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현대를 건지려면 군축회의도 필요하고 경제회의도 필요하겠지만 그 보다 먼저 새로운 세계 이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머리가 달라져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역사를 고쳐 읽자는 것이다.
P36 새 종교, 하나의 종교, 참 종교가 필요하다.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살리라는 말이다.
그러나 살리려면 일단은 버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
본래 종교 경전이라는 것은 개조적인 법률서가 아니요.. 자라는 힘을 가진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석가요, 예수요 하는 위대한 종교의 스승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그 때의 제도를 깨뜨리고 나서는 혁명가들이었다.
경전의 생명은 그 정신에 있으므로 늘 끊임없이 고쳐 해석하여야 한다.
* 마태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태복음]을 썼으므로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유대인의 계보를 강조하였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인류의 구원에 복음의 초점을 맞웠으므로 예수를 인류의 선조인 아담의 자손이라고 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당시 예수를 믿는 소외된 소수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가 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P40 지나간 것(過去)이라 하지만 역사는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다. 정말 지나간 것이라면 지금의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요. 현재 안에 아직 살아 있다. 완전히 끝맺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매우 가늘기는 하지만 그 대신 한없이 맑아진 빛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P41 역사에 적는 일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골라진 사실이요, 그 고르는 표준이 되는 것은 지금과의 산 관련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그 사실이 가지는 뜻이다.
P46 소동파 (여산)
모로보니 재인듯, 옆에서 보니 봉인듯
곳곳마다 보는 산 서로서로 다르고나
여산의 참얼굴 알아볼 수 없기는
다만 이내 몸 이 산속에 있음이네
인생을 뛰어넘지 않고는 인생을 모른단 말이다. 역사를 알아봄도 그와 같다. 자리가 변함에 따라 그 보이는 바가 서로 다르다. 역사가 참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몸을 여산 속에 두지 말고 한 눈 아래 온 산의 꼴을 보아낼 수 있는 자리에 세우듯이 우주, 인생을 굽어보는 자리에서 쓴 것이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