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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청춘 고전
정지우 지음 / 해결책 / 2026년 6월
평점 :

주변의 세계가 좁아진다는 것은 내 안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 을 의미했다. 매주 만나 가져야 할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술자리 보다는, 때때로 새롭게 느껴지는 산책길과 계절과 밤의 느낌을 나는 더 사랑했다.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나를 더 흘트려 놓거나 분열시킨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때때로 죄의식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도 극복하고 나면, 반드시 내 안의 괴로움 너머에 있는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p.173)
중고등학교시절,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고전을 읽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별한 재주를 가지지도 않았고,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전문학에 빠져있었고,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학창시절에는 딱 하나, 언어영역 시험을 볼 때 지문을 읽지 않아도 어느 책의 내용임을 아는 것 말고는 딱히 장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마흔즈음을 살다보니 그 시절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깨닫는다. 그 때 읽은 고전문학들은 내 삶의 굽이 굽이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살린 청춘고전』을 읽으며, “삶을 견디고 나를 발견하는 고전 독서록”이라는 문장에서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하고. 『나를 살린 청춘고전』은 정지우 작가가 읽고, 사유하고, 소화시키고, 삶을 채워온 고전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서문을 읽으며, 그가 말하는 '고전의 쓸모'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나의 굽이 굽이에 고전이 있듯, 그에게는 어떤 순간에 고전의 힘을 빌어야했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를 살린 청춘고전』에는 내가 수없이 넘어지며 또 도전하기를 반복했던 “월든”, 내가 비로소 사람의 구실을 할만큼은 컸음을 깨닫게 했던 “데미안”, 고뇌와 생각을 번갈아가지게 했던 “위대한 개츠비”등 내가 학창시절에 읽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며 곱씹었던 고전들이 있었다. 읽은 책들이기 때문일까. 그 고전들이 그의 삶에 준 영향들을 찾는 재미가 컸다.그가 풀어내는 방향이 흥미로웠고, 비슷한 감상을 깨달을 때에는 반가운 마음이,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느낌을 발견할 때에는 마음에 느낌표가 일렁이기도 했다.
“내 삶을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의 꿈이자 운명이다. 삶의 형태를 내가 결정짓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도리어 내 안의 운명이 내 삶을 내게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결저잊어줄지 모른다. (p.64)”는 문장은 여전히 내 안의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제는 방황하기에도 꼴사나울 나이인데,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고민하며 나를 만들어가며 사는 것 같다. 그런 그는 나에게 “흔들림의 순간들 속에서도, 나의 운명을 배반하지 않고 걸어왔음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p.66)”라고 응원을 주었다. 그래, 나도 매일 흔들리며 살아도 그처럼, 언젠가 또 다시 내가 헤세를 어슬렁거리고 있길 응원하리라 생각했다.
꽤 다양한 문장이 공감을 안겨주었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내 안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이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 등은 큰 공감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10대에는 삶이 내가 노력하면 무엇으로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자만했고, 20대때는 삶이 버거워 현실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이상을 찾으려 했다. 30대에는 그저 살아내느라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거나 나를 돌볼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40대가 되어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삶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절반쯤은 “어떻게 살았다”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결코 가벼이 들리지 않는 것은, 나 역시 이제 내 나이가 다짐이나 희망만으로는 살 수 없을음 알기 때문이겠지.
문득, 지금즈음 『나를 살린 청춘고전』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싶다. 그저 읽었던 고전들이 내 삶에 어떤 순간들을 지탱해왔는가를 깨달을 수 있아 고맙다. 혹, 누군가 나처럼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면 꼭 『나를 살린 청춘고전』을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순간조차 삶임을 깨닫고, 그 흔들림초자 나임을 깨닫고 또 살아낼 용기를 얻으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