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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
박성주 지음 / 담다 / 2025년 3월
평점 :
일주일만 한 곳에 머물러도 그곳의 풍경에 익숙해진다. 숙소의 문손잡이나 창박의 모습이나 욕실 수전의 모양같은 것이 그렇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던 동네 가게도 그렇고. 차 한 잔 놓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만큼 새로운 곳의 풍경은 짧은 시간에 그렇게 익숙해진다.
(...) 제법 긴 일정이라도 찰나처럼 어느새 그곳에 서 있게 된다. (p.191)
주말 저녁, 박성주 작가의 『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를 읽고 있는데, 소파에 기대 책을 읽던 아이가 말을 건다. “엄마,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잖아. 그럼 눈이 녹으면 뭐가 되게?” 답을 몰라 갸우뚱하는 내게 아이는 스스로 답한다. “봄”하고. 아이의 시덥잖은 농담이 분명한데, 나는 나도 모르게 『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가 그렇게 마음의 눈을 녹여내 마음의 봄을 향해가는 책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이 책은, 작가는 지금 그 어떤 여행지의 낯선 위에서 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있어야 할 곳으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책이 아닌가 싶다.
『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를 두고 '재미있는 여행기'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은 '여행기'라는 단어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유행처럼 출간되곤 하는 젊은 작가들의 해외여행기나, 순례길체험 등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이 책은 잔잔하고 조용하게, 길 위에서 자신의 감상을 기록해가는 일기같다.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낯선거리와 찰나의 감정들을 익숙한 내면의 생각들과 연결하여 성실히 탐구하고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으로 이어가는 과정들을 곳곳에서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도 깊은 공감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느낌이랄까.
타 여행기처럼 시간의 흐름, 장소의 변화 등이 아닌, 이 여행이 내게 남긴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설었던 거리가 꽤나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로 물꼬를 트터니 “여행 중에든 돌아와서든 짧은 여행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지나고 보면 한 줄로 정리되는 인생을 우리는 살고 있다. (p.193)는 자기발견을 툭 꺼내놓는다.
그런데 그 문장이 몹시나 소박하고 진솔한 편이라 부담스럽기는 커녕, “그러니까 말이야”하고 대답해주고 싶어진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여행 중인 친구에게 받는 편지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렇다고 이 책이 여행기가 아니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가 남긴 감성가득한 사진에서, 문장에서, 낯선 곳을 함께 걷는 감상도 분명 얻을 수 있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말을 부디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특히 “모든 순간이 여행이었다”는 여러번 곱씹어읽어야 했는데, 마흔을 넘어선 어느 시점에서야 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 잘 정리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르막 길도, 깜깜한 터널도, 악천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중한 순간만 남는다는 말을 읽으며 나도 더욱 나답게, 더욱 나에 집중하며 살 것을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