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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는 사람들
김희영.류정희 지음 / 담다 / 2025년 11월
평점 :

옅은 푸른 빛으로 눈길을 끄는 그래픽노블,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얇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묵직함을 툭- 하고 무심히 내려놓는다. 아마 이 책은, 아이를 키우며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언터치육아』의 일부를 그래픽노블로 완성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 문장 앞에 완전히 떳떳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도 한때는 보여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 그 보여지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내 마음을 갉아먹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고보니 그걸 알아채려면 마음에 구멍이 나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들에게 섣부른 충고 대신 “부지런히 지나가보자”하는 응원만 하게 되는 것일지도.
『천천히 걷는 사람들』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육아에 자신이 있다고 자만했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제대로 되는 것이 없던 초보엄마. 지친 아내에게 차마 속을 터놓을 수 없어 공황장애를 겪던 아빠. 그렇게 매일 서로를 갉아먹던 부부. 어느날 부부는 갑작스럽게 제주행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조금 느리게 살며 진짜 행복을 느낀다. 3달만에 돌아온 일상이 숨막혀 견딜 수 없다 느꼈을 때, 비로소 행복은 정답이 아니라 속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박자를 늦추기 시작했다.
사실 『천천히 걷는 사람들』의 제주살이 자체에 공감했던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 한달살이 한다니까” 제주살이를 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제주”라서가 아니라 “일상을 멈춘”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스스로의 삶에 쉼표를 찍을 수 있고, 그 쉼표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또 책의 마지막 장에 “천천히 나답게”라고 기록된 문장을 읽으면서도 그래, 이 책은 “나답다”는 말이 참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한 때는 나도 “나답게 살고자”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까지 다 지나고보니 진짜 나다움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을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할 수 있을 때 절로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꼭 삶의 터전을 떠나 살아가는 이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제 속도로 걷는 모두를 이야기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픽노블이라 더욱 쉽게 읽을 수 있고, 분량도 무척 짧지만 행복에 대해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준 책,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