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
양선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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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솔솔 핫초코』를 읽고 우리 아이가 했던 말. “이 작가님의 그림책은 꼭 손에 묻을 거 같아”. 아이 눈에도 방금 색연필을 슥슥 칠한 것처럼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는지, 아이는 작가님의 그림에 풍덩 빠져들었다. 그 후 아이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유813.7-양” 언저리를 탐색하곤 했다. 목이 빠져라 신간을 기다렸던 것! 그리고 지난 주, 식탁 위에 슥 얹어놓은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을 보자마자 “드디어! 핫초코 작가님이다!”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우리 집에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이 개장을 했다. 

 

첫만남부터 격한 사랑을 받은 그림책,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은 제목만큼이나 특별한 그림책이다. 버려진 물건으로 별난 놀이공원을 만들었던 故김갑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실화 그림책'이기 때문. 놀잇감이 부족한 시골아이들을 위해 본인땅 1천평을 직접 다지고 손수 놀이기구를 제작했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외손녀 양선 작가님이 그림책 속에 생생히 담아냈다. 양선 작가님에게도 특별했을 이 공간에는 동네 아이들도, 동물들도 자유로이 드나든다. 나누는 아름다움을 알았던 할아버지는 그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으로도 행복해졌다. 하지만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 할아버지의 별빛을 가려버릴만큼 화려한 조명을 단 큰 놀이공원이 생기고 할아버지의 놀이공원도, 할아버지도 동물들도 모두 나이를 먹게 되며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은 사진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양선 작가님의 책 속에서처럼,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동물들과 나누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 가슴찡한 이야기는 양선 작가님의 사진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록 놀이공원은 폐허가 되어 할아버지와 함께 잠들어있지만 양선 작가님에게도, 또 그 곳을 방문했던 이들에게도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그림책은 한층 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색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한층 짙고, 할아버지나 동물들에게서는 사랑이 묻어난다. 우리 아이 역시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지, '절친' (할머니 몰래 설탕묻은 '도나쓰' 사먹는 사이)인 외할아버지(=우리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려보며 무척 행복해했다. 

 

사실은 나도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를 아이와 읽으며 생각이 많았다. 내 할아버지가 아닌,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시절은 할아버지의 고함과 술주정으로 얼룩져있다. 어렸던 나에게도 이렇게 깊은 상흔을 더 깊이 겪었을 내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닮지않으려 부던히 노력하셨다. 그래서 당신 손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할아버지가 되주셨다. 그래서 감사하고, 안쓰럽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똑같이 몇 십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따뜻한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긴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비록 할아버지께는 한번도 사과받지 못했지만, 양선 작가님의 추억을 조금 빌려 미움의 끈조차 놓아버리고 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될 나를 위해서.  

 

양선 작가님의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에 걸린 마법이 너무 따뜻해서, 독자마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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