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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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인 순응이 무섭습니다. 저는 치열하게 삽니다. (p.193)

 

셰익스피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오늘날과 많이 달라졌을까요? 운명의 진보는 위대한 사람들에게 달려있는가요? 사람들의 처지는 파라오 시대보다 지금 더 나아졌나요? (p.147)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아무도 구름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위에 검고 부어오른 게 있었죠. 그리고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우는 것처럼 쏟아집니다. 눈물처럼요. (p.137) 

 

삶이란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 같지만, 그런데도 무언가를 향해 매듭짓기 위해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 중에도 자기만의 독백으로 빠져들었던 인문들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그들이 연결한 희미한 선이 보이고, 옅은 행복과 희망의 기운마저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요. (p.186)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었을 때 감히 그녀가 가졌던 생각이나 아픔과 절망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별개로 나는 나만의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때만 해도 무척이나 강렬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기에 먹을 걱정 없이 글을 쓸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하리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손톱을 물어뜯게 했던 것 같다. 한참이나 지나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야 버지니아가 촘촘히 기록해간 문장들에 대해 감탄했다. 내가 좀 나아졌기 때문인지 어른이 된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했던 것 같다. 

 

다시 시간이 한참 흘러,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이라는 책으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손끝에 감성이 묻어나올 것 같은 표지 색과 쓸쓸해 보이는 버지니아, 문장의 기억이라는 감각적인 제목에 매료되어 당장에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펼쳐 든 것과는 달리 나는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을 빠르게 읽지 못했다. 책이 어려웠냐고? 천만에.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이 많아 적어가며 읽느라 오래 걸렸다. 만약 나처럼 사심을 담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다. 그렇지만 부디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느리게 읽으시면 좋겠다. 그녀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보고, 역자가 살을 붙여준 내용들을 천천히 음미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을 읽으며 앞으로는 단순히 필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옮겨적은 이유를 짧게라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원래도 문장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감상을 기록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니, 좋아하는 문장을 만나고 읽고 소화하며 기록된 과정들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나아가 타인에게도 그 감동을 전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버지니아의 문장보다 역자의 문장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어떻게 살 것인가”, “초월적인 존재를 사랑하게 되다” 등에 담긴 내용이 다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에 담긴 문장들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특히 버지니아가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일순간 표면으로 떠오른 조각들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읽는데 울컥하는 마음이 들 만큼 공감이 일었다. 그 문장은 나에게 “찢기고 부서져도 소중한 나의 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센텐스에서 다음 「문장의 기억」에서 누구의 문장을 전해줄지 무척 기대된다. 바쁘고 버거웠던 1월이었지만,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나의 깊은 저 어딘가까지 위로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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