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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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영영 이해받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된다.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영역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통을 위한 이 기록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35) 

 

나 또한 그 혼돈의 시간을 통화할 수 있었던 건 운동을 시작하고, 아기 반찬은 사 먹이고, 피곤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에는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혼자 카페에 가서 두세 시간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글 쓰면서였다. '포기'가 괜찮아지게 만들었다. 무질서 뒤엔 질서가 혼돈 뒤엔 안정이 왔다. 노력과 견딤과 시간이 만들어낸 거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건 슈퍼우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당신과 나, 세상 모든 엄마라고. (p.65)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지난 한 해도 참 부지런히 일하고, 책을 읽고, 삶을 살았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정말 큰 위로와 감동이 되었기에 더 늦기 전에 많은 “엄마”들이 이 책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리해본다. 수오서재에서 출간된 임희정 작가님의 『질문이 될 시간』이 바로 그것. 

 

『질문이 될 시간』은 수많은 여성이 겪는 출산과 경력단절, 엄마로 사는 삶과 여자로서의 삶 그사이를 채우는 감정들을 촘촘히 기록한다. 아나운서라는 나름 '전문직'을 가진 작가도 경력단절을 겪는 작금의 시대,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육아와 여성의 경력보전이 병행되기 어려운 나라의 현실을 시리도록 아프게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성장에 대해 깨닫고, 감동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 겪었던 시간과 '사건'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공감과 허탈함과 위로와 감동 등등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섞어 느꼈다.

 

사실 엄마들의 마음에 관해 기록된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 까닭은, 그저 감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은 이성적이다. 이성적으로 현실을 보고 정책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덤덤히 기록된 감정이 독자에게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했던 것 같다. 

 

'난임'에 대해 기록된 부분에서는 꽤 많이 울었다. 감사히도 나는 인공수정까지는 겪지 않았지만 쉽지는 않게 엄마가 된 케이스였기에 작가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많이 아팠다. 내가 느꼈던 아픔과 시림을 느끼며, 또 나보다 더 힘들게 엄마가 되는 이들의 상처를 몰라주었음에 반성을 느끼며 한 줄 한 줄 읽었다. 항우울제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엄마가 된 후 변해버린 세상에 너무 힘겨워했던 친구가 생각나 눈물이 계속 났다. 내 주변에는 한 명이라 특별히 생각했던 산후 우울증이, 사실은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자각하며, “엄마”가 된 이들에 대한 대책은 너무 미흡하지 않나 여러 번 생각했다. 

 

여전히 우리는 갓 엄마가 된 시간들을 그저 축복된 시간이라고만 배운다. 물론 축복된 시간임은 맞지만, 과연 '축복'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기에 방금 엄마가 된 이들이 겪는 시간은 너무 크고 시리고, 힘겹고, 아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콧물을 훌쩍거렸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복된 시간이 마냥 복되지만은 않았으니까.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때때로 무겁고 버겁고 아프니까. 임희정 작가가 분명 눈물로 남겼을 이 기록을 나눠 받으며 울고, 위로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엄마들이 꼭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그래서 많이 울고, 속이 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한 해, 엄마로 살아낸 이들에게 짠한 위로를 전하며. (이 문장이 “아빠들은 수고하지 않았다” 따위의 왜곡으로 읽히지 않기를. 그런 의도는 전혀 담지 않았다. 그들의 노고에도 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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