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장면들 -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
민바람 지음, 신혜림 사진 / 서사원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사치는 :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여 은근히 깨우친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만나는 작은 우연은 잠시 숨통을 틔워주는 삶의 선물이다. 내 능력으로는 여기서 더 나아갈 수는 없다고 느끼는 허탈한 마음에 바사치는 하나의 신호. 한자리에 고여 있다는 느낌이 들수록, 더이상 나아갈 힘이 없다고 느낄수록 사소한 일들의 의미를 느껴 보는 것은 중요하다. (p.133)

 

누그러움 : 마음씨가 따듯하고 부드러우며 융통성이 있다.

           몹시 추워야 할 날씨가 따뜻하다. 

그런 오늘이 쌓이고 쌓이면,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남에게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는 누그러움이 생겨날 거라고 믿는다. '몹시 추워야 할 날씨가 따뜻하다'라는 또 하나의 뜻처럼 (p.186)

 

 

『낱말의 장면들』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익숙한데 새롭고, 평범한데 눈부시게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마치, 내가 서른의 중반이 되어 자개장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탄과 비슷하다. 늘 촌스러운 과거의 유물이라 생각했던 자개장이, 어느 시골집 마당에서 햇살을 받으며 반들반들 닦이고 있던 날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는데, 이 책이 딱 그런 기분이다. 익숙하고 편안해야 할 우리 낱말들이 생경하고, “배워야 할 언어”로 느껴졌는데, 『낱말의 장면들』을 읽으며 순우리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반짝이는지 불현듯 깨닫고 배운 것 같다. 

 

먼저 『낱말의 장면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우리말 단어들에서 느꼈던 감정과 감동을 쉬이 놓고 싶지 않았던 작가가, 그 단어들을 품고, 마침내 그 낱말들이 이어져 문장이 된 책이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 문장을 쓰다 보면 때때로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되기 마련인데 글을 어찌나 보듬고 쓸고 닦으셨는지, 반들반들한 자개장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름답고 반짝인다. 감각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낱말들은 보석 같아서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낱말의 장면들』을 읽는 내내 나는 보물찾기를 하듯 소중한 단어들을 소리 내 읽어보았다. 그럼에도 잊힐 것들은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고 싶어서 천천히 작은 소리로 아껴 부르며 그 단어를, 문장을 곱씹어봤다. 

 

에세이니까 금방 읽겠지 하며 『낱말의 장면들』을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어떤 문장이나 낱말, 또 군데군데 가만히 자라 잡은 사진이 꽤 묵직하게 느껴져 오래 두고 읽었다. 어떤 밤은 질기도록 길다는 문장에서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타인의 너그러움에서 반성을 배우는 장면에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타인에게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겠다 다짐하는 문장들을 만날 때에는 나도 그러리라 마음을 먹으며 주먹을 꽉 쥐어보기도 했다. “자기 사랑이 어려운 순간”을 읽다가는 슬쩍 눈물이 나기도 했다.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문장이 주는 위로가 커서 온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했다. 

 

다른 책들보다 한 발치 작은 이 책, 『낱말의 장면들』은 나지막한 높이의 가로등 같다. 그래서 담벼락을 채 넘지 못했던 마음들을 보살피고,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비추며 “그래, 오늘도 괜찮아”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분명 『낱말의 장면들』에서 꺼내는 낱말들은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를 줄테니, 이번 겨울 부디- 이 책을 통해 작은 온기를 품을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