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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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여, 그대는 과연 악행에 빠져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어리석은 젊은 시절에 한순간의 불운으로 인해 저지르게 된 일이며, 또한 그 후로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잘못을 잊지 않고 평생에 걸쳐 속죄하였으니, 이제 그 죗값은 다 갚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저잣거리에 나가 매를 구걸하는 일은 그만두고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도록 하라. (p.122~123) 

 

 

와,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정보라 작가님의 단편소설로 욕망과 공포의 심연을 마주하게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보라 월드' 직행 티켓이다. 그야말로 보라색 공포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핏발 서린 공포가 아닌, 사람의 저 끝, 저 아래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랄까? 

 

사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의 제목이 된 첫 번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온갖 상상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두 번째 남자'인 이유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첫 문장부터 매료되어 문장에 허우적거리다 보니,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이런저런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렇게 나는 속절없이 보라 월드에 빠지는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의 두 번째 이야기 『감염』이었다. 안타깝게도 가제본으로 먼저 이야기를 만나본 터라 모든 이야기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아픔, 그것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과정 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더욱이 요즘 뉴스를 장악하고 있는 마약중독을 계속 접한 까닭인지, 인간이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것이 어떤 최후를 가지고 오는지도 생각할 수 있어 소설을 읽었음에도 깊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릇된 방향으로 빠지고 마는 모습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고자 고개를 휘젓는 주인공이 과연 그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을 읽으며, 그녀가 왜 이렇게 세계문단의 주목을 받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 서늘한 공포,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나를 휘감아 읽는 내내 감정이 요동쳤기 때문. 물론 우리의 생과 사는 언제나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사람의 생과 사가 그저 '심장이 뛰고 뛰지 않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사람, 생물학적으로는 죽어있지만 살아있듯 선명한 감정은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명 묵직하다. 읽고 나면 뒷맛이 씁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책이다. 읽은 후에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책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만나고 싶다면,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을 꼭 한번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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