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인사 - 제1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76
어윤정 지음, 남서연 그림 / 샘터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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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진짜 헤어져야 하는 걸까? 엄마가 집에서 가져온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해가 산 끄트머리에 걸려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나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계속 걸었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지금 천국으로 돌아간다. 내가 살던 세계를 떠나온 것뿐,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p.41) 

 

 

솔직히 『거미의 인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정채봉 문학상」의 대상수상작이라고 하니 읽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표지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이 가족과 거미가 어떤 관계일지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첫 문장에서부터 “나는 죽었다”가 등장하리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거미의 인사』를 읽는 내내 더 슬프고 가슴이 아프면서도,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했던 것 같다. 

 

『거미의 인사』는 책의 제목이 된 「거미의 인사」, 「영혼의 무게」, 「알마 가라사대, 사랑은 계속된다.」라는 제목을 가진 세 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죽음'을 다룬다는 점. 사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 굳이 죽음을? 하는 마음이었으나, 읽다 보니 죽음을 무겁고 힘겹게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낼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겪지 않으면 좋겠지만 아이들도 상실을 겪지 않나.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어른보다 작은 세상에 사는 아이들은 부재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미의 인사』처럼 죽음이 두렵고 슬프기만 한 단어가 아니라, “그럼에도 사랑은 지속된다”는 극복으로 변화될 수 있는 책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가족을 떠나게 된 누리는, 딱 하루 환생하여 가족과 제대로 작별할 시간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거미가 되어 가족을 만나러 오는 것.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가족들의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노력하는 누리를 보며, 사랑은 나이를 먹는 만큼 커지는 것은 아님을 새삼 느낀다. 이별은 아프지만, 언젠가 만날 날을 기약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에서 깊은 사랑을 깨달았고, 기발한 상상력과 문장이 더해져 한층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혹여 가족을 잃고 아파하는 친구가 있다면, 『거미의 인사』를 읽고 많이 울고, 충분히 그리워한 뒤에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에는 위로와 응원, 그리고 극복의 힘이 잘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슬프지만, 생과 사는 늘 손을 잡고 있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 귀하게 생각해야 하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기를 매 순간 의식하지 않듯, 우리의 '숨'도 순간마다 감사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거미의 인사』를 읽는 내내 우리의 오늘이 절대 당연하지 않음을 생각했다. 물론 아이가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몇 년, 아니 수십 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미의 인사』를 만난 덕분에 아주 작게라도 '오늘'의 소중함을 배웠지 않나 생각해본다. 헤어짐을 겪는 날이 오면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아낌없이 사랑하라는 작가님의 말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거미의 인사』 덕분에 우리는 오늘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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