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민병래 지음,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기획 / 원더박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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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우치지 않는 역사, 잘못을 빌지 않은 역사는 모습을 잠시 감추거나 숨길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거나 잊히지 않는다. 오지 뇌병원 자료실에서 묻혀 있던 조선인의 피울음은 일본과 자이니치(재일교포) 두 청년 예술가 덕분에 햇살을 받았다. 언젠가 도쿄도 인권프라자 기획전시실에서 〈in mater〉가 상영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은 역사에 길이 남을 터이다. 일본이 조선인 대학살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첫날과 다름없이 때문이다. 그날이 되도록 빨리 왔으면 좋겠다. (p.231) 

 

 

혹자는 과거의 일본의 행적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협력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 자체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빌지도 않은 용서를 왜 우리가 찾아 해야 하며, 과거의 행적에 꾸준히 더해지는 것들까지 물을 수 없는 무엇인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더욱이 바다의 안위를 해양생태계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을 '괴담' 취급받는 요즈음, 당장 오늘이 아니라고 하여 과거도 미래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를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역사서를 좋아하고 꾸준히 읽은 편이라 간토대학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는 충격적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도 근거자료가 뒷받침되니 가슴이 아팠고, 제대로 모르고 있던 사실에는 화가 치밀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6,661명(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의 무고한 시민이 학살당했는데도 일본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과나 배상은커녕 진상규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우리 정부 역시 진상규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참으로 힘 빠지는 이야기지만, 우리마저 잊어버리면 머지않아 간도 대학살은 그저 역사한 편의 이슬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기억하지 않는 역사를 가해자가 기억할 일은 없지 않나.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는 방대한 자료와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 책이다.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회와 민병래 작가가 공동기획한 이 책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해 해온 노력, 다양한 기록과 기억 등을 바탕으로 간토대학살의 실체를 전달한다. 일기장이나 증언이 수없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도 우리 정부도 진실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간토대학살의 진실보다는 알려진 이야기들만 겨우 알고 있다. 극단적 예로 일본이 집계했던 231명과 독립신문이 집계한 6,661명이라는 엄청난 틈을 지금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 아닌가. 불과 100년밖에 지나지 않은 역사인데 이렇게 묻어두고 파헤치지 않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질 만큼 나는 간토대학살에 대해, 우리의 역사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반성의 마음과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번갈아 했다. 

 

아픈 과거에 집착해 미래의 많은 것을 도모하지 못한다는 우려의 말을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 그들은 부정하는 과거의 역사를 우리까지 잊어야 하냐고. 우리까지 부정해야 하냐고. 진정한 발전은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고, 올바르게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없이는 우리는 단 하나의 과거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으로도 똑바르게 살 수 있다.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는 그저 단순히 간토대학살 그 100년 전의 사건 만에 집중하는 책이 아니다. 수많은 학살의 하나이며, 인간이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그릇된 가치관의 결과물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과거의 것으로 덮어둔다면, 앞으로의 인류에게는 또 다른 모습의 제노사이드가, 또 다른 차별이, 희생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 한다. 특히 역사의 과거를 잊으라는 분들이 이 책을 꼭 읽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정말 그렇게 지워버려도 되는 것들인지 다시 생각할 기회를 한번은 가져보기를 바라본다.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를 읽는 내내, 이 책을 세상에 꺼낸 분들, 그리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분에 이 책의 독자들이 더해지고, 또다시 그 독자들로 인해 간토대학살에 관심을 끌게 되는 이들이 더해져- 결국에는 정부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사과, 보상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절차를 밟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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