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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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은 충격에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고 있지만 어떤 절규도 들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 고통의 순간을 처연한 오페라의 간주곡만이 조용히 채워나간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울지않는 시칠리아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시칠리아 출신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둔 파치노 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고 시칠리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울부짖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입은 크게 벌어져있고, 절규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터져나왔으나, 시칠리아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숨이 멎도록 처절한 고통이 계속된 땅,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p.356) 

 

 

사실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기다리던 책이였다. 김상근 작가님의 「초격차」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읽었을 뿐 아니라, 몇년 전 「삶이 축제가 된다면」을 통해 그가 그리는 베네치아를, 김도근 작가님의 아름답고도 깊은 사진을 이미 만난 적이 있었던 터라 (이 후 로마와 피렌체도 찾아 읽었다.)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의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 더욱이 시칠리아라니. 근 1년간 지중해에 관련한 책들을 계속 읽어오며 가장 관심이 많았던 시칠리아라니. 

 

시칠리아, 지중해 최대의 섬인데다 지중해의 중앙부,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다보니 과거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꼽혀 수없이 '지배자'가 바뀌었던 지역이다. 수려한 풍경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산물 덕분에 지금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아픈 땅'이었던 시칠리아는 다양한 입지조건을 가지고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그저 피스타치오와 아몬드가 많이 나는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했던 시칠리아지만, 지중해의 역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시칠리아에 대해 궁금해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 마음으로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읽으며 마음에 품었던 궁금증은 해소되고, 복잡한 마음은 안타까움과 응원이라는 조금 더 명확한 마음으로 변경되었다.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고대 시칠리아의 고통부터 그리스, 로마, 스페인 등 열 네번이나 이어진 침략을 천천히 이어간다. 여러 수탈 과정을 겪으며 심신이 억압받아온 과거를 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칠리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도 경제적 고립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환경도 정서도 메마를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어쩌면 표지 사진 속 어부의 모습은 그 한 명이 아니라, 시칠리아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김상근 작가님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이어지는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속 시칠리아가 슬픈 모습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시칠리아의 역사나 현 상황을 면밀히 다루다보니 가슴아픈 면이 없지 않아있지만, 다양한 민족과 종교 등에서 파생된 문화나 예술을 사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도해서, 어쩌면 시칠리아의 민낯을 제대로 살펴보는 기분이 든다.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 위에서도 잠시 거론했지만, 김도근 작가님의 사진은 마치 지금 내가 시칠리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생생함은 물론, 사진 속에는 감정도 느껴지는 것같아 천천히 감상하게 된다. 김상근 작가님의 수려한 문장들이 김도근 작가님의 사진을 만나 더 깊고 진한 이야기로 탄생되는 기분이랄까.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시리즈가 해박한 지식의 인문학이자 감성적인 기행문이고, 사람냄새나는 다큐멘터리로 느껴지는 것은 진솔한 이야기꾼과 마음을 찍는 이의 만남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중해 중앙부에 위치하여 2800년간 뺏고 빼앗기는 역사를 겪다보니 수많은 세계사 책에서 늘 거론되는 곳, 시칠리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칠리아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자주 만나볼 수 없다. 그래서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더 특별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시칠리아가 오롯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님들의 따뜻한 시선과 응원처럼 부디 '슬퍼도 울지 않는 나라', 시칠리아가 부디 '슬프지 않아 울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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