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도감 -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곳
엔야 호나미 지음, 네티즌 나인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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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속 사람을 들여다보면 경찰 아저씨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목욕탕 그 자체는? 

목욕탕을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삶을 만나게 된다. 

 

 

나는 대중목욕탕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피부가 예민하다) 한 번도 목욕탕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코로나로 대중목욕탕에 갈 수 없다고 슬퍼하는 친구가 의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목욕탕 도감』을 읽고 나니 급 대중목욕탕이 가고 싶다. 문득 어쩌면 목욕탕은 나의 묵직함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게 하는 곳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목욕탕 도감』을 처음 접한 나의 마음은 ‘무슨 목욕탕을 도감까지 만든담?' 하는 부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이니 뭔가 있겠지 하는 기대와 내용이 재미없으면 오밀조밀한 일러스트나 보자, 하는 반반의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웬걸!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나는 이 책에 풍덩 빠져들었다. 

 

일단 『목욕탕 도감』에서 가장 큰 기대감이 들었던 일러스트. 아이소메트릭이라는 건축 도법을 사용해 대중목욕탕 내부를 그려냈다.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렸다는 말에 기대감이 있긴 했으나, 기대 이상으로 볼거리가 많은 일러스트였다. 목욕탕 안 구조물을 길이, 폭, 높이 등을 정확히 표현할 뿐 아니라 120도를 유지해 살짝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에 입체적이고 생생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색감과 표현으로 아기자기함까지 잡은 느낌이랄까. 『목욕탕 도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러스트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무척 뛰어났다. 목욕탕 안의 화분이나 선풍기, 체중계까지 생생히 담아낸 일러스트를 오목조목 들여다보며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혹 『목욕탕 도감』을 읽게 된다면 일단 일러스트들을 천천히 감상하시고 내용을 만나보시면 좋겠다. 각각의 설명들이 더 입체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올 테니 말이다. 

 

도대체 『목욕탕 도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궁금해하실 분들도 있을 터. 일본 대중목욕탕 24곳에 대한 특징이나 감상, 음식 등의 이야기가 고루 담겨있는데, 섬세한 표현력 덕분인지 마치 내가 그 목욕탕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몸이 좋지 않아 목욕탕에 일하게 되며 작가가 느꼈을 기분을 알 것 같아서 더욱 공감하기도 했고, “건축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좋아하는 일을 해”라고 말해주는 지인이 있었음에 안도감도 들더라. 어쩌면 온탕처럼 따뜻한 문장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백여 페이지, 더구나 타국의 목욕탕 이야기를 읽으며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하루의 일과 끝에 샤워하고 맥주 한잔을 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알기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또 애정을 담아 그려낸 특별한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와 온도에 알 수 없는 찡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목욕탕에 내가 가볼 수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충분한 온기를 얻었음은 분명하다. 

 

부디 다른 이들도 이 책에서 여유와 휴식을 얻을 수 있기를, 온기를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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