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번 버스의 기적
프레야 샘슨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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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원해서 그녀를 찾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늙었지. 난 그녀를 찾아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내 인생을 바꿔놨으니까. 그녀가 아니었다면 부모님께 감히 대들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야. 내가 살았던 배우의 삶도 없었겠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단 말을 그녀에게 하고 싶어. (p.75)

 

 

사실 이 책을 펼치기 전, 60년 전 첫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10대에 했더라도 이미 70이 훌쩍 넘은 나이, 남은 세월이 너무 적지 않나. 혹시 찾았지만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는 눈물 짜내는 책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맙소사!

 

『88번 버스의 기적』은 개똥 같은 억지 로맨스로 눈물을 짜내는 책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사랑보다는 사람, 인간애 등에 더 진한 서사와 감동이 있는 책이라고 말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또 한 달을, 또 일 년을 살아내며 눈물이 났던 자리를 다독이고 회복하며 더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책이었달까. 사람인(人)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형상을 따서 만들었다 했던가. 이 책은 그렇게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이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위안이 되고, 따뜻해진다. 어떤 이들의 로맨스는 꽤 뻔하지만, 그 뻔함조차 따뜻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처음에는 힘든 생활에 지친 리비가 우연히 프랭크를 돕는 소설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프랭크는 리비에게, 리비는 프랭크에게 기댄다. 물론 프랭크와 딜런도. 또 리비는 딜런에게 딜런도 리비에게, 페기와 퍼시도, 에스메와 딜런, 딜런과 에스메- 하다못해 리비와 레베카까지! 서로에게 기대고 어깨를 내어주며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찡한 소설이었다. 

 

물론 세상에 소설은 넘쳐난다. 그 각각의 소설들은 로맨스나 기쁨 혹은 슬픔, 감동이나 반성, 때로는 공포가 고루 들어있다. 그런 측면에서 말한다면 『88번 버스의 기적』은 '딱 이거!'라고 말하긴 어렵다. 로맨스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찐~한 러브스토리가 없고, 휴먼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은근 달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온 마음이 말캉말캉 따뜻해진다. “아 이 맛에 소설 읽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쿨피스의 강력한 단맛도, 탄산의 톡 쏨도 없지만 오래오래 사랑받는 밀키스 같은 책이랄까! 

 

그래, 『88번 버스의 기적』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서,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이들의 등을 토닥이는 포근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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