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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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기타를 잡은 이유는 연주의 즐거움보다는 겉멋에 가까웠다. 아직도 촌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가 우연한 기회에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뽐낼 수 있다면 반번매력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덕분에 음악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진이 앞에서 당당하게 큰소리치며 선생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겉멋으로라도 기타를 시작하길 잘했다. 

 

오빠와 나란히 앉아 손가락 연습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하아, 이래서야 언제 노래 한 곡을 끝내지?' 싶어서 금세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도 첫날은 꿋꿋하게 연습을 한다. 첫날만 백번. (P.179)

 

 

“같이 산다는 건 서로의 서툰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인지 모른다.” 이 말 때문에 이 책이 궁금했다. 『내가 널 살아볼게』라는 제목도, 브런치의 출판콘텐츠 후보 선정 작품인 것 때문도 아닌, 저 말이 내 마음에 닿은 것은 저 문장에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타인에 대한 수용도 들어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의 말이 서툴어도, 상대방의 말이 서툴어도 그저 들어주는 것. 이거야말로 이해와 수용의 문장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궁금해졌다. 

 

『내가 널 살아볼게』라는 2인조 밴드로 활동하는 남자, '만수'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 '영진'이 한가지 소재를 놓고 각자의 생각을 엮어간 에세이로, 서로 다른 입장과 마음을 엿듣는 듯한 묘한 구조의 책이다. 미역국이나 길거리 꽃, 요거트, 치킨 등 우리가 흔히 만나는 소재들을 유쾌하고 특별한 감성으로 기록하는 등 편안하면서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 많다. 

 

더불어 『내가 널 살아볼게』라는 글과 함께 그려진 일러스트가 꽤 인상적이다. 표정과 초점이 없는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배경이나 소품은 무척 생동감 있어 묘한 감상을 준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일러스트는 '꽃을 사다'의 트럭 일러스트. 무척 자세하게 그려진 식물들과 무심한 듯 바라보는 트럭 아저씨, 아무도 안 쳐다보는데도 남의 시선을 느끼는 만수의 대조적인 모습이 여러 감정을 자아내게 했다. 

 

서로의 마음을 번갈아 읽으며 피식 웃는 대목도 있었고, 코가 시큰해지는 대목도 있었다. 큰 감정의 변화를 주는 책은 아니지만 소소한 감동,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일상' 같은 책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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