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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 2023 볼로냐 아동 도서전 Beauty and the World 선정작
빅터 D.O. 산토스 지음, 안나 포를라티 그림, 김서정 옮김 / 한빛에듀 / 2023년 4월
평점 :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여러분이 아는 그 무엇보다 오래 전이요.
나는 어디에나 있어요.
모든 나라, 모든 도시, 모든 학교, 모든 집에.
나는 누구일까요?
당신은 '나'가 누구인지 눈치채셨나요? 사실 저는 단숨에 눈치채지는 못했어요. 처음엔 하나였으나 모양도 소리도 달라졌다는 말을 읽고서야 “아!”하고 무릎을 '탁' 쳤죠. 그런데 아이는 저보다 더 빠르게 이것이 '글씨' 혹은 '말'이라도 대답을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했냐는 저의 질문에 아이는 부드럽거나 날카롭고, 사랑을 줄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 '말'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의 주인공은 말입니다. 사랑을 보여줄 수도 있고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은 아마 처음 만날 때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때 더욱 멋지다고 느끼실 책입니다. 평소에는 그림책을 읽을 때 글씨를 가리고 그림을 먼저 감상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림을 펼쳐주고 천천히 글씨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내용'에 더 깊이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언제 태어났고, 어떤 모습을 가지며,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갈 수 있는지 오롯이 받아들이길 바랐습니다.
아이에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를 읽어주며 사실은 몇 번이나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어와 함께 사라져가는 문화, 상처를 줄 수 있는 말 등이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어가 많아지면 세상이 다양하고 다채롭다는 말이 마음에 깊이 닿았습니다. 남보다 잘나기 위해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먼저 배우는 이상한 나라, 더 빨리 간편히 말하기 위해 자꾸만 줄여지는 고운 한글 등이 떠올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를 통해 언어가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우리의 말과 글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고 지켜졌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어 기쁩니다. 이 책과 함께 위인전 '세종대왕'을 읽고, 조선어학회에 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한글을 더 예쁘게 쓰도록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언어를 더 아름답게 쓰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이 책은 김이나 작사가의 첫 번째 추천도서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말을 붙이지 않아도 혼자서도 빛나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어'라는 소재 자체로 충분한 가치와 감동, 생각과 깨달음을 전해주는 책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은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소비하고 당연하게 지나치고 있을까요? 우리의 말이, 우리의 한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