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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평점 :

법은 아동노동과 착취를 줄이는 데 보조적 역할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작 아동노동과 착취를 줄인 주요인은 부모와 자녀 간 소득 격차의 확대, 교육에 대한 태도 변화였다. 교육에 대한 태도 변화가 대부분 인적자본에 대한 수요 증가 때문임을 고려하면 산업화가 가장 진전된 국가에서, 거기서도 산업화가 가장 빨랐던 지역에서 아동노동의 고난이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p.103)
종종 지인들과 과거의 어느 순간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농담을 한다. 그리고 그 농담의 끝은 그때가 행복했을까, 지금이 더 행복할까인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곱씹어보면 참 아이러니한 대화 아닌가. 과거와 지금의 생활 수준은 비교할 대상도 아닐 만큼 차이가 큰데 왜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어느 시점과 지금의 행복을 비교하는가. 이렇듯 발전이 결코 긍정적인 면만을 지니지 않음을 느끼며 점차 비관적인 방향으로 흐르려고 할 때 <인류의 여정>은 나를 다시 낙관적인 생각으로 이끌어 나온다. 기술의 발전, 인구, 문화에 지리까지 포함한 너른 시선으로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광범위하고도 놀라운 책 덕분에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
<인류의 여정>은 경제학자 오데드 갤로어 교수의 '대중적인' 첫 책인데 이미 전 세계 30개국에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전부터 <총균쇠>, <사피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평에 궁금함이 앞섰던 책이라 출간과 동시에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화법에 매료되어 커피가 식어버리는지도 모른 채 집중하여 책을 읽었다.
인류의 기원으로 시작하여 인류의 정착과 문명의 형성, 농업의 시작과 인구의 변동, 가속화된 산업화와 더불어 일어난 교육, 인구의 변화와 성장 등에 대해 찬찬히 풀어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동노동에 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막연하게 지식인들의 성장으로 아동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 위로 새로운 지식을 얹으며 또 한 번 모든 것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 '부와 불평등의 기원'으로 엮인 2부에서는 빈부격차의 원인, 불평등한 발전, 여러 제도와 문화의 요인, 지리의 한계성에 대해 풀어냈는데, 그럼에도 낙관하는 저자의 생각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제도와 문화, 지리 그리고 다양성 측면에서 지역적 격차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다양성 관련 정책에 더해 문화와 기술의 확산을 통해 지역적 격차를 최대한 좁히고 뿌리 깊은 요인의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p.282)라는 그의 말에 동의와 응원을 동시에 담아보기도 했다.
저자가 30년간 공부한 내용을 300페이지가량으로 '얻어'보는 것에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책 속에는 놀라운 범위의 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풀어낼 실마리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러나 묵직한 지식과 달리 문체는 전혀 무겁지 않았기에 어려움 없이 일어낼 수 있었다. 세상 어느 학자가 지리적 한계를 잔디밭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오즈의 마법사>로 기술의 진보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만약 -그와 내가 같은 언어권이라는 전제하에- 내가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으면, 나는 분명 그 수업에 풍덩 빠져 있었으리라.)
아무래도 한동안 세계는 야수의 아가리를 벗어나는 시기가 빨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불평등은 쉬이 사라지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불평등의 기원 속에서 더 나은 방식을 찾고 빈곤의 문제도, 인류의 번영도 해결할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 풍요로운 미래에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무척이나 좋아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우리나라를 벗어나 전 인류적인 개념에 넣어보게 만든 책, 과거의 비관적인 사례에서 낙관적인 미래를 꺼내는 새로운 시선과 통찰을 만들어준 깊이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