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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평점 :

분홍이야말로 여자 색이지.
키라의 말이 끝나자 키라와 에바는 칼로 손바닥을 그어 새어 나오는 피를 새하얀 우유가 가득 담긴 야트막한 그릇에 떨어뜨린 다음 핏방울 천천히 퍼져나가 작고 붉은 꽃들을 피워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p.15)
우유, 피, 열.
이건 무슨 조합이야. 이 책을 받았을 때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이 말이다. 이 세 가지 단어는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더욱이 첫 장면이 우유 위에 피를 떨어뜨리는 여자들이라니. 이 책에는 스산하고 슬프며 만질 수 있다면 서늘함이 느껴질 것 같은 여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총 11편의 단편이 묶인 이 책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시각이나 촉각 등이 느껴진다. 문장에서 온도가 느껴진다고 적는 지금도 이 표현이 맞는지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그렇다. 서늘하다.
묘한 게 첫 장부터 끝까지 스산한데, 그렇다고 책이 덮어지지 않는다. 이상한 여자들이 궁금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본다면 정답이라고 동의해줄 것 같다. 분명 이상한데 이상한 여자들이 계속 궁금해지고,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이상한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책은 그래서 우리 이야기 같고, 현실 어딘가에서 충분히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얘기 같다. 이 책을 스토리 그대로 만나는 것도 충분하지만, 각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특징을 발견해보는 재미도 있다. 이상한데 묘하고, 묘해서 끌리는 이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