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마귀 - 2023 화이트 레이븐스 선정작, 2023 ARKO 문학나눔 노란상상 그림책 95
미우 지음 / 노란상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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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우리나라에서는 길조는 까치가 전담하여 안타깝게도 흉조로 구분된다. 불길한 새, 사체를 먹는 새, 나쁜 일을 끌고 다니는 새.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평생 까마귀를 봐왔던 것 같다. 두려움은 '까마귀 소년'을 읽으며 안타까움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까마귀의 본질을 바라볼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사실은 조금 울었다. 숲으로 숨어드는 까마귀에서, 자신을 감추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 아마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동굴에 가두었던 시절을, 타인이 되게 되고자 노력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울 것을 각오하고라도 부디 이 책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까마귀가 다시 훨훨 날아가는 모습에서 진짜 내가 어떤 모습인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깨닫게 될 터니. 

 

이 책은 반 이상이 흑백이다. 그래서 더 까마귀의 감정 상태나 상황에 집중하게 된다. 깃털이 빽빽한 숲을 지나는 장면이나, 다른 새의 모습이 되고 싶어 노력하는 까마귀의 모습에서는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이 흑백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오롯이 까마귀의 슬픔에 집중하게 되는데, 책을 세번쯤 다시 읽고서야 작가님이 일부러 이런 색, 이런 구조의 그림을 그리신 건 아닐까 깨달을 만큼 몰입감이 있다. 뒤편에 색이 점점 더해지는 장면 역시 감정의 상승효과와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여 종이라는 한계에 전혀 제약받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씨를 전혀 읽지 않고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완전히 느낄 수 있고, 영화 한 편을 보듯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놀라울 만큼 완성도가 높은 일러스트다. 

 

일러스트만 대단하냐, 당연히 아니다. 나는 일러스트를 열 번 이상 본 후에야 글을 읽었는데,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낮은 목소리가 틀어막은 귀를 파고든다는 문장에서는 너무 가슴이 아팠고, 앞쪽의 '너는 너야'와 뒤쪽의 '너는 너야'가 너무 달라서 가슴이 뛰었다. 내 아이에게, 또 다른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까마귀가 날아갈 때의 '너는 너야'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수십 번 다짐했다. 

 

나 혼자 수십 번 이 책을 읽은 후, 아이에게 보여줄지 말지 고민을 했다. 성격이 강한 친구들에게 자주 상처를 받는 고운 아이가 이 책을 보고 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이는 이 책을 보고 까마귀를 쓰다듬어주며 울었다. 자신은 누군가를 향해 모진 말 한 번, 화 한 번 뱉은 적 없으면서도 미안해하며 울었다. 책을 읽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세상의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타인에게 함부로 뱉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반대로 타인이 내게 던진 말 한마디가 나에게도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라는 본질을 해칠 수는 없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를 통해 상처받을까 봐 혹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이 책을 줄지 말지 고민했던 나의 우려와 달리 아이와 대화를 하며 아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또 한 번, 우리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어야겠다고, 내 생각을 덧씌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책은 오래도록 우리 집에서 다시 읽히게 될 것 같다. 자존감이 상처 입을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아름다움을 지녔는지 잊어버릴 때마다 다시 펼쳐보고, 다시 날아오르게 할 것 같다. 작가님은 내게 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수천 장 페이지의 책보다, 몇 시간 상영되는 영화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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