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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품 이야기 - 재난 수습 전문가가 목격한 삶의 마지막 기록
로버트 젠슨 지음, 김성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2월
평점 :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전장에 쓰러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해오겠다는 결의가 있다. 죽은 사람일지언정 뒤에 남겨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에 몸을 내던지는 사람은 행여 자신이 궁극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유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리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도 사랑하는 이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p.81)
이름을 찾아주는 것을 빼면, 존엄성이야말로 우리가 죽은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미 빼앗기고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슬퍼한다고 뭐 하나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슬픈 이유는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p.35)
원래도 간이 작은 나는, 공포영화나 잔혹한 범죄 배경의 영화 자체를 못 본다. 아동성범죄를 주제로 한 영화를 배우 '공유' 때문에 봤던 나는 영화 중간에 오열하며 뛰어나와 속을 게워내야 했다. 엄마가 되면 어른이 된다더니, 나의 간은 더욱 작아져 모성을 자극하는 것이나 재난에 관련된 것도 쉬이 보지 못한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매일 깨닫는 까닭에 심장이 저밋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한빛비즈의 신간, <유류품 이야기>를 놓고도 많이 망설였다. 내가 이 책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감정을 섞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솔직히 말하면 프롤로그 첫 문단부터 울지 않을 자신감 따윈 없었다. “신발은 항상 나온다. 지진, 홍수, 사고, 화재, 폭발 등 사건의 종류와 상관없이 신발은 어디에서나 보인다. 가끔은 발, 혹은 발의 일부가 그 안에 들어있기도 한다. (p.6)”로 시작한 책을 내가 어떻게 울지 않고 읽는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재난에 대해 감정만이 뒤범벅이 된 상태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읽고 난 후에도 며칠은 마음을 수습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이 책 덕분에 비로소 사건을 바라보는 눈을, 사건 후에 눈물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육군 장교일 때도 전사자 예우 담당을 해왔던 그는 '재난수습가'라는 다소 낯선 직업으로 살고 있다. 아이티 대지진부터 911테러, 카트리나 허리케인 등 수많은 재난의 현장에서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한 기록을 담은 이 책에서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회복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하지만, 자신의 진짜 목표는 산 사람을 돕는 것이라는 그의 글을 읽으며 참사현장에서도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에 급급한 '높으신 분들'의 모습을 여러 번 떠올려야 했고, 죽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죽어서도 부당한 혹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이들 이야기에 분노해야 했다.
물론 작가가 미국인이다 보니 우리와 다소 다른 견해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의 책에서 우리는 분명 재난에 대해 국가적 책임감을 가지는 것, 유족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 등은 반드시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해보게 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어버리고 세상까지 무너져버린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일인데, 우리는 여전히 그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에 비유하자면, 이 책은 외양간을 고치는 이야기다. 혹자는 소 잃고 나서 외양간은 고치면 뭘 하냐겠지만, 소도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아 다음에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소도 잃는 경우를 수없이 보지 않았나. 부디 우리도 무너진 세상 앞에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고자 하는 대신에, 모든 걸 잃은 이들이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성숙한 재난방지책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