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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ㅣ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평점 :

새장 안의 새는 우주의 움직임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하늘을 향해 날 뿐이었다. (p.101)
인간은 멀리 있는 폭력에는 공분하지만, 근접한 폭력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p.163)
저자의 '시간순삭 전쟁사' 시리즈의 첫출발이었던 '병자호란'을 읽고 '잊지 말아야 할 과거, 내일을 위에 딛고 일어서야 할 바닥의 역사'를 무척이나 깊게, 제대로 알게 해준 책이라고 리뷰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1년이 가까이 흘렀다. (22년 3월) 작가의 유튜브도 즐겨보는 편이기에 다음 편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두 번째 출간 소식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두둥, '중동전쟁'이라니. 수많은 전쟁, 복잡한 갈등구조, 엄청난 무기들이 동원된, 그러면서도 부족민들까지. 과연 내가 이 방대한 전쟁사를 읽어낼 수 있을지 겁부터 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임용한이 임용한 했다'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도 방송을 통해 세계사를 가장 맛있게, 가장 제대로 알려주던 기량을 책에서도 마음껏 펼치셨으니 말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실로 방대하지만, 작가의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막연하고 어렵기만 하던 '중동전쟁'이 조금은 더 가깝고, 알만한 역사로 바뀌었다.
이야기는 1차, 2차 중동전쟁에서 시작되어 6일 전쟁과 욤키푸르 전쟁에 이르기까지 '4차 중동전쟁'을 모두 풀어낸다. 첫 장에서는 근대의 열쇠를 쥔 유대인들이 일으키는 파장의 시작부터 풀어내기에 긴장감이 가득한데, 특히 마을에 총격을 퍼부을 때는 심장이 옥죄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재앙'으로 불리는 건국 기념일은 전쟁이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모습을 남겼는지 알 수 있는 극단적인 표현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이동이라는 슬픈 역사를 만든 1차 전쟁이 끝이 났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 미국까지 합세한 2차 수에즈 전쟁은 또 한 번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된다. 사실 2차 전쟁은 자세한 내용을 몰랐던 터라, 다른 전쟁에 비해 짧았음에도 고전하며 읽었는데,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내용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충돌로 발발된 3차 전쟁을 가장 생생하게 그려주시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원래도 믿고 읽는 작가님이지만, 3차 전쟁을 읽으며 어떻게 문장을 이토록 생생하게, 영화를 보듯 쓰실 수 있는지 여러 번 감탄의 마음이 들더라. 정확하게는 문장에 대한 감탄과 전쟁에 대한 잔혹함을 번갈아 느꼈다. 이게 소설이라면 엄청나게 '맛깔나는' 이야기겠지만, 이것은 엄청난 난민을 만든 '잔혹 현실'이니 말이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어 순식간에 욤키푸르 전쟁까지 진행된다.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뒤편에는 전쟁이 남긴 교훈과 현실을 담담히 이야기하시는데 이 부분에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과연 피 위에 그려진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가 하는 오래된 의문도 다시 떠올려보며 말이다.
종교, 경제, 국제관계 등을 얽어 서로 뺏고 빼앗기고, 공격하고 공격당하며 중동의 역사를 써왔으나, 결국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수많은 목숨을 잃게 한 사건을 두고 '승자'라는 표현은 사용할 때마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을 그저 슬퍼하기만 한다면 그 불안정한 땅은 또다시 피로 물들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여전히 '휴전' 중인 우리도 과거의 것을 슬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4차' 전쟁을 통해 생각해본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라는 작가의 말이, 쉬이 들리지 않는 것은 오늘날에도 세계 모든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은 아닐까. 정치와 외교라는 이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