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역사 - 연기 신호에서 SNS까지, 오늘까지의 매체와 그 미래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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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이들에게는 이 허구가 현실이 되어 있다. 실제로 독재정권 아래 살아가는 세계 인구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형식적인 민주주의 안에서 박해받거나 굶주리거나 충분히 교육받지 못하거나 충분히 정보를 얻지 못하거나 산만해지거나 자아에 허영을 품거나, 짧은 메시지, 상업과도, 요란한 정치선전, 허위 비방, 대략적인 뉴스, 과격한 분노, 폭력에 호소, 점차 치밀해지는 감시 등의 디지털 홍수에 굴복한다. (p.360) 

 

 

'역사'가 왕성해진 시기를 언제부터라고 보는가. 개인적으로는 '기록'이 가능하고 '기록'이 보전되는 시기부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록 이전에도 역사는 존재하고 벽화 등의 모습으로 고대의 역사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것이 수 대를 걸쳐 전해질 수 없고, 기록한 자의 시각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하기에, 기록은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특히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읽고, 쓰고, 보고, 전파하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 '기록'이 '총보다 강하다'는 말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디어의 역사'라 이름 붙여진 이 책에서는 기호로 이루어진 의사소통에서부터 고함 등으로 시작된 '소통'은 전령, 파피루스, 기념비, 종이 등으로 나아가는 인쇄술부터 저널리즘, 민주주의, 언론의 발달, 넘치는 정보의 자유와 선택이 이르기까지 '기록되어 공론된 것'들의 역사를 깊게 다루고 있다. 

 

권력자들의 정보 독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는지, 정보는 아주 먼 과거에도 곧 힘이 되었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거짓 문서를 날조한 교회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종말이나 병으로 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가짜뉴스들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미 고민해본 바가 있었음에도 이 책을 중간이상 읽으면서도 미디어의 발전이 긍정적인 측면이 큰지 부정적인 큰 면이 큰지 판가름하지 못한 까닭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검은 이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쇄술의 발전과 언론의 황금시대에 관한 내용은 다소 어려웠으나 꽤 유익했다. 몇몇 나라의 언론에 대해 읽으며 나라 특유의 어투 등을 떠올려보기도 했고, 우리나라 언론사의 사례들에서 비슷한 경우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여러 사건에 크게 좌우한 미디어의 힘을 여러 건 찾아볼 수 있음이었는데, 그때 미디어가 달랐더라면 역사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또 한국의 신문 수익의 90%가 광고이며 이미 몰락의 순을 밟고 있음이 놀랍지 않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같은 양상을 보이는 까닭도 있겠지만, 이미 그것을 대체하는 수많은 것들을 나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까닭인지도 모른다.

 

책의 중반, 세계 각국의 수많은 언론사 이름을 읽느라 다소 늘어진 속도를 다시 당긴 것은 후반부였다. 인용한 문장에서처럼 미디어의 홍수에 대해 잔뜩 겁을 주고 시작한 이야기는 우리가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며, 어떤 정보를 취해야 하는지 자세히 검토한다. 권력과 언론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또는 협동), 개개인의 미디어에서 오는 즐거움과 루머 등 현시대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미디어의 민낯에 대해, 또 국가의 정보 통제를 다소 벗어났지만, 여전히 거대기업 수하에 있는 시대의 정보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었다. 참고문헌만도 6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정보의 책이다 보니 앞 장을 다시 읽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읽고, 넘쳐나는 미디어들에 대해 개인의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기에 유의미한 독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종이 위의 글씨가 읽기 편한 아둔한 아날로그인간인 내가, 디지털 시대에 자라고 있는 아이와 함께, 더 잘 받아들이고, 잘 구분하며, 잘 습득하고자 하는 데에 큰 가르침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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