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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평점 :

‘아빠는 매사에 그런 면이 있었어.’
기일 다음 날이었다. 카메라, 쌍안경,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아버지.
‘그런데도 한번 싫증 나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니까.’히토미 고모가 했던 그 말에 흑백합 오센에 대한 비정함이 더해져 가오루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p.200)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이 왜 반전 미스터리 추리소설인가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청춘들의 첫사랑이 야기 같았기 때문. 책의 곳곳에 반전이 숨어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음에도 '그래서 어디가 반전이지? 뭐가 속임수지?'하는 생각으로 꽤 읽어나가면서도 뭐가 반전일지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아! 하고 깨달았고, 그때야 비로소 와, 하는 감탄이 나왔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만 놀랄 수 있는 책. 눈앞에 널린 복선이 복선인지도 모르고 잔뜩 거두어드리는 책.
원래 이 소설은 2010년에 이미 한국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사실 그 자체가 글의 완성도나 인기를 어느 정도 보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새 책조차 읽히지 못하는 게 많은 세상에서, 신간 소설들을 재치고 십여 년 지난 글을 다시 출판하는 것이니.) 처음에는 이 책을 왜 굳이,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 책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겠다 싶어졌다. 그만큼 스토리도 탄탄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이야기도 충분하기 때문.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에 스며들어있는 진짜 이야기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하고, 뒤늦게 나타나는 범인의 진실은 요샛말로 '현타' 그 자체다. 그러면서도 살인사건이 이 책의 주된 스토리가 아님은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추리 소설에 살인사건이 주된 스토리가 아니라고? 물론 이 이야기에서 뺄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맥락은 첫사랑 이야기도, 살인사건도 아니다. 아이들 눈으로 확인하는 어른들의 무정함과 비인간적임, 노력하는 사람과 쉽게 얻는 사람 등의 씁쓸함과 부끄러움 등이 굵은 줄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다 읽고 아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역자의 말을 읽는데, 이 책의 작가 또한 실명이 된 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실종상태라고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는 인생마저 이상하게 남기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또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역자의 말처럼 우리의 고정관념이 우리를 속인 것인지, 이미 어른이 된 눈으로 바라본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설책을 읽고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되새기게 된다니, 놀랍고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