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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유전자 - 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니컬라 라이하니 지음, 김정아 옮김, 장이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평점 :

인간은 다르다. 어떤 대형 유인원과도 달리, 엄마와 딸의 생식 기간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딸이 생식 활동에 들어가는 시기와 엄마가 폐경을 겪는 시기가 겹친다. (...)폐경은 여성의 삶에서 특별한 쓸모가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때 여성은 생식의 궤도를 바꿔 아이를 낳는 사람에서 육아를 돕는 사람이 된다. (p.145)
처음 이 책 내용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가 필독서라고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이기적 유전자 역시 이 책과 마찬가지로, 어려웠지만 인상적인 독서였다) 책의 초반 개미굴에 관한 내용을 읽으며 '협력'이라는 단어에 내가 씌워놓은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한 겹 벗겨냈다. 그제야 나는 '협력'은 경쟁이나 전쟁처럼, 우리 역사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협력은 인류 역사의 한 부분이며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p.17)”이라는 작가의 말을 바탕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며 내가 생각하지 않은 영역의 '협력'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던 공동육아도, 세포를 만드는 것도, 진화에서도 협력은 큰 영향력을 차지한다.
처음 유전자와 세포의 협력 과정, 독립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학적 회로가 1도 들어있지 않은 내 머리 탓인지 책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가족과 타인, 사회의 과정들로 넘어가면서부터 점차 흥미로웠다. 그저 유전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나의 협소한 시각이 조금은 넓어진 것일까. 인간사회와 규범, 생활상 등에서도 협력을 이야기할 수 있음에서 작가의 통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동물군들만 살아남았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 책의 바탕에도 협력의 유전자가 깔려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결국 미래에도 공생하지 않으면 진화나 발전이 없고, 결과적으로는 생존이 없다는 결론도 유추해낼 수 있지 않을까.
협력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주동하는 원동력이라는 작가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협력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역사는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또 그 협력이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이었음을 또 한 번 느낀다.
이 책을 감히 이기적 유전자의 짝꿍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결코 이기적이지만은 않았듯, '협력'의 유전자 역시 협력과이기를 오가며 변화해온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느낌 이릴까. 아마 앞으로도 세계는 협력과이기를 반복하며 발전하고, 희생하고, 성장하고, 퇴화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남긴 강한 메시지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지금처럼 공통의 아픔으로 몸살을 겪은 세계에는 현재의 이익보다는 대다수를 위한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한 시각을 열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