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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 1
전형진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8월
평점 :

타인을 도운 일로 수모를 당했다면, 수모를 기억할 것이 아니라 베푼일을 기억하라는 말이엇다. 수모 당한 일로 원한을 새기기보다는 베푼 일을 떠올리며 덕을 쌓으라는 그 뜻은 어떤 경전의 구절도 담지 못한 깊은 가르침이었다. (p.28)
역사서 좋아하고, 사극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다. 금주령을 배경으로 암울한 시대를 그리는 스토리라기에 단박에 집어들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16페이지까지 이어지는 등장인물소개에 덜컥 겁이 났다. 분명 나는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이 페이지를 여러번 들랑날랑거리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럴 겨를도 없이 이야기에 빠져 읽기도 바빴다. 혹시 두꺼운 책장과 수많은 등장인물에 이 책을 포기하려고 했다면 그러지 말 것. 2권이 끝인게 아쉬워질테니 말이다.
이야기는 꽤 빠르게 진행된다. 1733년에 시작된 이야기는 1697년 장길산과 양일엽의 만남으로 가기도 하고 1761년까지 바삐 흐른다. 고요한 술도가에서 전국을 배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 고요한 마을에서 목련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이 책의 작가는 분명 오랜세월 이 이야기를 구상하여 한 칸 한 칸 블록을 맞추듯 이야기를 이어간 것이 분명하다. 사건들 사이에 어색함이 없고, 모든 사건은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른다. 그래서 꽤 두꺼운 이야기임에도 지겹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자세를 고칠 겨를도 없이 풍덩 빠져 읽었다.
책을 읽으며 장면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세세하여 영상을 보는 듯했는데, 후에 알고보니(혹여 선입견이 생길까 '작가의 말'을 미리 읽지 않는 편이다.) 작가의 본업이 미디어영상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아마 이 책에서 장면묘사가 사라진다면 책의 분량은 꽤 줄어들지 모른다. 허나 그렇게 되면 이 책의 매력도 사라질 것 같다. 마치 그 시대를 직접 겪는 듯 생생하고, 영화 한편을 보는 듯 몰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영화화 될지 알수는 없지만, 각 인물들에 어울릴 배우들을 상상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나의 지식이 짧아, 소설을 리뷰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어줍짢은 리뷰로 다른 독자에게서 결말을 만나는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으니, 단어를 고르고 고르게 되는 것. 그래서 이 책을 한 줄로만 정리하자면 “역사와 창작을 잘 버무리고, 그 위에 아름다운 묘사와 무협으로 양념한 맛깔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