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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박은봉 지음 / 서유재 / 2022년 9월
평점 :

안데르센은 상처받을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그에게 여행은 도피처이자 위안처요 에너지원이었다. 자존감 충전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덴마크에서 밟히고 치인 자존감을 외국의 저명인사들과 귀족들의 환대로 회복하고 채우는 충전 과정. 모욕감으로 깊게 베인 상처에 인정과 환영의 연고를 바르는 치유 과정. (p.93)
나는 역사서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알고 싶어서 읽었고 읽다 보니 재미가 있었을 뿐인데, 읽으니 조금 더 알게 되고 조금 더 알게 되니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그러다 보니 꽤 많은 역사서를 읽은 듯하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게 된 작가님이 몇몇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분이 '박은봉' 작가님 같다. 책을 좋아하는 분 중 (혹은 책육아 하시는 분 중) '한국사 편지'라는 책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 같은데, 바로 그 '한국사 편지'의 저자가 박은봉 선생님이다.
'한국사 편지'가 너무 좋았던 터라 다양한 버전을 찾아 읽고,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으며 '한국사 편지 개정판'을 간절히 기다리던 나는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자마자 구매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마음이 아플 때 읽는 역사책”이라니. “이런 역사책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책 표지의 문구가 내 마음 같아서 읽기도 전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삶의 위기에 빠져 캄캄한 터널을 걷는 것 같을 때, 왜 마음에 대한 역사책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작가님은,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신다. 읽는 내내 너무 좋았고, 내가 걸어온 위기의 시간을 돌아보며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잘 이겨냈다고 나를 도닥여줄 수 있었다. 작가님을 만나본 적은 없으나 작가님의 문장에서 따뜻한 성정이실 거라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님의 마음을, 내면의 단단함을 엿본 것 같아 좋았다.
찰스 다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의 위인 '마음'을 바탕으로 역사를 풀어낸다. 찰스 다윈이 '진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분이지만, 아픈 마음 위로 힘겹게 차곡차곡 '종'과 '진화'를 쌓아 올렸음을 생각하니 그의 연구가 한층 깊게 느껴진다. 세계가 사랑하는 동화작가 안데르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자전적 이야기들을 써낸 작가임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작가님만의 특유한 차분함으로 풀어주시니 더욱 좋았다.
어둠을 걷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역사를 써나가는 과정을 읽으며, 문득 진짜 역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아팠던 시간을 '역사 속 인물'들의 삶에 비추어 이겨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작가님의 말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또 박은봉 작가님 글을 오래 읽을 수 있길 바라며. (부디 “한국사 편지”를 또 써주시기를, 혹은 이 책처럼 우리 역사 속 위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주시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어. 과연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다윈은 다시 일어났다. 언제나.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