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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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알았어. 일종의 혀 말기 같은 거야. 학교에서 혀 말기에 대해 배운 적 있어? 누구한테는 당연히 말리는 게 누구한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잖아. 나한테는 그랬어. 명확했어.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P.45) 

 

 

'종말주의자 고희망'.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건물주이자 잘 되는 국밥집의 손녀지만, 내면은 먼저 죽은 동생으로 가족들과 데면데면함을 유지한테 살아가는 딱한 중2. '갑작스레 찾아온 불편한 침묵'으로 표현되는 가족의 아픔은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성장시키고, 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운다. 유일하게 믿고 지내는 삼촌은 삼촌대로 자신만의 사춘기를 겪는다. (사춘기가 뭐 별건가.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 사춘기지) 그러나 '종말주의자'라는 수식어와 달리 희망이도 삼촌도, 부지런히 성장한다. 그 시간을 희망은 소설을 쓰며, 삼촌은 자신을 꺼내 보이는 것으로 이겨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결국, 종말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이야기의 전반에 널리 깔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단단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종말”은 어쩌면 졸업 같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졸업은 헤어짐의 개념도 있으나,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성장의 개념도 가지지 않나. 작가의 종말은 내면의 성장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줍잖은 감상문이 책의 깊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 오히려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그 희망이 결코 멀리 있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잘 살아내게 하는 '국밥' 같은 힘이다. (희망이네! 가게가 왜 하필 국밥집이었는지, 아빠가 왜 국밥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깔려있는지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힘든 날,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따뜻한 밥을 내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렇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든든히 내어주는 것 같다. 

 

 

네가 잘못한 건 아니지. 넌 그런 애니까. 하지만 그런 점이 주변을 외롭게 만들수도 있다는 거야. 같이 있어도 혼자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거야.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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