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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평점 :

일하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노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표면으로나마 의미 있어 보이는 사적인 작업들로 그 시간을 채우게 되었지만 실은 그것들도 그저 허튼 짓거리일 뿐이다. (p.89)
현재와 과거의 밥그릇 차이를 예상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과거에는 현재보다 더 육체적 고강도의 노동을 했기에 지금보다 밥양이 훨씬 많아야 했을 거라는 유추에서 나온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 제시된 '오늘날의 밥양'보다 양이 적은 나는 “그럼 나는 노동을 덜 하는가”하고 피식 웃다가 문득, 이토록 고도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노동 사회와 그저 먹는 양만 달라졌나, 싶은 생각에 닿았다. 그때와 달리 첨단과학을 바탕에 두고도 왜 우리는 먹는 양만 적어졌을 뿐 여전히 노동에 갇혀, 노동이 주를 이루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접하고 놀라움이 먼저 들었다. 지나친 양, 의미 모를 노동을 사회 전반에 지배된 '긍정'으로 수긍하며 (혹은 수긍하지 못해도 전반적 분위기가 그러하니) 지속해온 노동들이 사실은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노동 자체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내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많은 분이 이 책을 접하면 놀라움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끼실 것 같다. 우리가 회사에서 '직접적 업무와 관련 없으나 해온 일들'이나 '눈치 보던 칼퇴근', '프로젝트나 회의' 등으로 만들어내던 스트레스 등이 실체가 없는 가짜 노동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 반면 유연하게 받아들일 분들도 있을 텐데, 이 역할을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팬터믹'이 해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고 회식이나 회의가 사라졌다. 그런데 우리들의 회사들은 대부분 하던 업무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비교적 잘. 결국 '일의 연장선' 등으로 불리던 회식이나 팀 회의 등이 없어도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물론 전반적인 경우겠지만)
만약 그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노동을 '가짜'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이 책이 끝났다면, 이 책 역시 '가짜 노동'을 한 책이었을 터. 다행히도 이 책은 가짜 노동을 버리고 '의미'를 되찾는 법도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 역시 가짜 노동을 그냥 '도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이 인간에게 주는 생존력이나 돈, 그리고 기본적인 것을 넘어 성취와 본질 등의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내가 진짜 바라는 것,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목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작가는 말한다. 시간으로 노동을 계량하지 말라고. 근무시간표를 벗어나는 법과 왜 그래야 하는지에 읽으며 '법정근로시간' 자체가 우리의 노동을 시간에 구겨 넣고 있었음을 겨우 깨달았다. 또 나를 위한 의미, 진짜 일에 집중하는 법 등에 대한 작가의 견해도 꽤 많은 생각을 제시한다.
물론 개개인만의 노력으로는 '가짜 노동'으로 묶인 노동 사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단체도 개개인이 모여 이루는 것이기에 하나하나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가 일하는 진짜 본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함” 아니었던가. 무의미한 일,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간을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조금 더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우아한 물장구를 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