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사카모토 유지.구로즈미 히카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아웃사이트(OUTSIGHT) / 2022년 9월
평점 :

“금요일은?” “금요일은……안 돼. 회식이 있어.” “뭐…… 영화는 아무 때나 보러 가도 되니까.” 키누는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했지만, 무기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아아” 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타벅스 커피가 조금 썼다. (p.151)
일본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종종 평화로이 흘러가는 일상을 그린 영화들은 너무나 평온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주는 것들이 종종 있다. 아마 이 책의 영화 버전을 만나면 그런 감상이 들지 않을까? 나는 책과 영화가 둘 다 나오는 것은 반드시 책부터 보는 사람이라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책의 영화 버전이 6주간이나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고, 주인공이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미 검증되었다고 보아도 무관할 터. 심지어 이 책은 책이 영화가 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책이 된 케이스다.
200페이지 정도의 로맨스소설이다보니 금방 읽었다. 내용도 어렵지 않고 쉬운 편이라 한 시간 내에 읽는 것 같다. '운명'처럼 막차를 놓치고 만난 사람과의 사랑, 그리고 도와주지 않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치여 점점 사랑도 무뎌진 이별. 어떤 면에서는 특별할 것 하나 없고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이야기라 우리들 모두가 지나온 시간들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영화 '새콤달콤'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이 꽤 담담히 그려졌는데,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변하지 않는 마음도 없고, 퇴색되지 않는 사랑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책에서 그 과정을 보는 마음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각본의 노벨라이즈라서 일까, 문장이 꽤 섬세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순간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군데군데 삽입된 일러스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영화에 등장한 일러스트를 책에도 삽입한 거라고 한다. 이 일러스트 때문에라도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시간은 미화되기 때문일까. 돌아보면 그 시절의 사랑은 참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저 사람이 좋은 거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순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돌아보니 그 순간들이 진짜 꽃다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순간은 시들고, 그래도 돌아보면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서영은 님이 부른 '그 사람의 결혼식'이 이렇게도 정확한 표현이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 밤.)
비록 한여름은 가버렸지만, 한여름 밤의 꿈같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여름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꽃다발 같던 순간들로 온 마음이 푸근해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