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한빛비즈 문학툰
SunNeKo Lee 그림, 정이립 옮김, 너새니얼 호손 원작, Crystal S. Cha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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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홍글자를 읽었던 날이 여전히 선하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주홍글자(많은 분이 주홍글씨로 알고 계시지만, 이는 오역과 더불어 영화나 노래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를 읽고 분노에 휩싸였다. 종교인의 부도덕함, 남편이라는 작자의 음흉한 술수, 마녀사냥하는 사람들까지. 어린 나의 눈에도 그것은 비겁하고, 부끄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주홍글자를 두 번째 읽을 때는 신입사원으로서 거의 모든 것이 힘들고 부당하다 느꼈던 상태였기에 분노보다는 절망감을 느꼈고, 이번 기회에 세 번째 주홍글자를 만나며 슬픔이 나를 뒤덮음을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한 작품은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준다. 어쩌면 그 맛에 책을 읽는 것이겠지. 

 

당신은 누가 제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간통을 저지른 헤스터? 그를 그런 상황에 내몰고도 자신의 목적대로 모두를 이용하는 칠링워스? 자신의 성직자 자리를 위해 모든 것을 묵인하고 혼자 아파한 것을 속죄로 착각하는 딤스데일? 욕을 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가장 피해자는? 간통을 저지른 모든 죄를 덮어쓴 헤스터? 그의 딸로 태어나 삐뚤어진 성격으로 자라버린 펄? 아내에 대한 원망으로 악마가 된 칠링워스? 죽음으로 속죄하는 딤스데일? 바로 이 포인트가 슬픈 이유다. 이 책에는 잘한 사람도 없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불쌍하지 않은 사람조차 없다. 학생 때는 그저 잘못한 것에 집중하여 이 책을 읽었고, 갓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잘한 사람이 없음에 절망을 느꼈다면, 지금은 모두가 불쌍해서 슬프다. 정작 낙인찍힌 채 살아가는 것은 헤스터 하나였으나, 나머지 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낙인 속에 갇혀 사는 거다. 

 

한빛비즈의 문학툰을 만나며 '빨강머리앤'은 완전한 기대감으로 시작했고, '레 미제라블'은 우려는 있었으나 역시 기대가 우세했다. 그러나 '주홍글자'는 우려의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던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책장을 덮은 지금은 만화로도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원전을 읽었을 때의 여러 감정을 만화를 통해서도 섬세히 느끼고, 어떤 장면에서는 글보다 더 짠한 마음을 느끼게 돕기까지 해주었다. 혹시 문학툰 중 단 한 권만 읽으실 예정이라면(그러기 쉽지 않으시겠지만), 부디 주홍글자를 읽으시길. 그림의 힘을 가장 크게 느끼실 수 있으실 터. 한빛비즈의 문학툰이 세계명작시리즈를 이루기를, 한국 고전들도 문학툰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된 것은 주홍글자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지금은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종교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시대 역시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주홍글자'가 수없이 존재한다. 문득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적어버린 주홍글자는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 역시 짊어지고 사는 주홍글자는 없는지도. 만화책으로 이런 감상을 하는 것이 우스우실지 모르나, 그 우스움은 이 책을 만나고 나면 사라지실 거다. 나처럼 씁쓸한 마음에 괜히 책을 쓸어보게 되실 만큼 완벽한 그래픽 노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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