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은유하는 순간들
김윤성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여행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놀라운 일은 없다. 내가 오슬로행 완행열차를 탔던 그 날 조용한 멈춤과 바게트 같은 일상적인 것에 놀라움을 발견했듯이, 여행을 통해 일상의 놀라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p.19)

 

내가 그리 서정적인 사람은 못되는지, 책의 제목에 이끌려 그 책을 만나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 제목에 매료되어 그 내용이 몹시도 궁금했다.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사실 꽤 많은 감상을 얻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여행이 주는 것들을 세세히 열어본 적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여행이 은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만나고 싶었다.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여전히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이의 여행이 아름답지 않을 도리는 없다.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고, 다음을 기대하는 사람의 내일은 언제나 눈부시기 때문이다. 

 

스웨덴, 오슬로, 스위스, 아일랜드, 볼리비아 등. 나는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다큐멘터리에서 그곳들을 만나며 설원을, 산맥을 멍하니 바라본 것이 전부다. 다큐멘터리 속의 그곳들은 느리고 평화롭다면, 이 책 속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곳처럼 담담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담담함 속에 숨은 그곳들은, 다큐멘터리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진짜 그곳'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용히 기록된 작가의 내면에 종종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지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그저 글이라는 매개로 만나, 그의 내면에 동의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글이 '은유'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은 책처럼 사진도 아담(사진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더 집중하고 들여다보게 되더라. 이상한 일이다. 마치 작은 창문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기분이었다.)하고, 감정의 폭도 넓지 않았던 책. 그러나 그 안에서 매일매일 성장하는 작가는 절대 작지 않은 느낌이 든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을 한 칸씩 쌓아 올린 이의 모습 같달까. 처음 지도를 들었던 날은 삐뚤어진 사람이었을지 모르나, 꽤 많은 여행을 통해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을 것 같다. 내가 그녀의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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