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0단어로 읽는 중세 이야기 - 어원에 담긴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
김동섭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7월
평점 :

본래 고대 영어에는 공기를 뜻하는 말이 두 개 있었다. 지금은 날씨를 뜻하는 weather가 본래 공기나 하늘을 일컫는 말이었고, loft라는 말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어 air가 이 고유어들을 밀어내고 영어에 자리를 잡았다. 왜 공기같이 가장 기본적인 말들이 사라진 것일까? 그 이유는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영어에 밀물처럼 들어온 프랑스어에서 찾을 수 있다. (p.52)
원래는 시리즈로 나오는 책이나 묵직한 두께의 책을 좋아하다가 아이를 낳고 기르며 책을 집중하여 읽는 것이 어려워, 타협한 것이 오디오북이나 짤막한 에세이였다. 아이가 자랄수록 책 읽을 시간도 함께 자랐고, 그 전환기에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이 이런 류의 책 같다. (1일 1페이지, 하루 1페이지 등 시리즈) 하나의 주제로 묶여 꽤 깊으면서도, 키워드로 단락을 나눠주어 중간에 덮게 되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 지난주 내내 길게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을 때 틈틈이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키워드'의 힘을 깨달았다. 그때 샘물 같았던 책 읽는 소중함도 다시 느꼈고.
사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중세라는 방대한 시대를 100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부터 들었다. 무지한 내 머릿속에도 중세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열댓 개는 금방 떠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쩜 이렇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꼭꼭 짚어두는지도 놀라웠고, 단어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의 풍성함이 느껴졌다. 단어에서 생활상과 역사, 시대와 사상까지 엿볼 수 있음을 또 한 번 알게 되었달까.
또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아이스브레이킹 등에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많은 이들에게 널리 널리 읽히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유럽인들의 이름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의 국적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존(John)은 영국인의 이름, 장(Jean)은 프랑스 이름, 후안(Juan)은 스페인 이름이다. 중세 유럽에는 많은 왕국과 제후국이 있었는데, 복잡한 중세 유럽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왕들과 제후들의 이름에서 독특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p.170)
인용문에서 엿볼 수 있듯, 언어에서 중세를 찾아간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의 이야기로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그래서일까. 마치 “옛날에~”로 시작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처럼 눈이 솔깃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책을 읽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이 단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더라. 또 책에 인용된 구절이나 삽화 덕분에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중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냥 지나쳐온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단어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드러내는 키워드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아름다운 언어, 뜻깊은 언어를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날씨, 야금야금 읽기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