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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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모든 것에서 떨어진, 이런 게 삶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런 삶이 대체 무슨 소용이겠소. (p.69)

 

누군가의 편지나 일기장. 엿보면 안 되지만 사실 그것들이 주는 짜릿함은 분명하다. 그 짜릿함의 본질은 누군가의 '진실'과 마주한다는 것 때문 아닐까? 일기장이나 편지만큼 있는 그대로 가 전달되는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책, “우편함 속 세계사'. 히틀러나 피카소뿐 아니라 람세스 2세의 편지까지 엿볼 수 있다니 어떻게 이 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은밀하고 진실한 편지들을 여럿 만날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또 편지의 배경이나 주인공들에 대해 풀이가 곁들여졌기에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눈을 '쫑긋'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사람에 따라 편지는 그저 '사적 문서'라서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일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편지들(그리고 이 책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까지)이 역사에 얼마나 다양한 영향을 주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장을 좀 보태어, 이 편지가 없었다면 역사적 사건이나 순간도 없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들도 있었고. 그런 상상력을 더해 이 책을 만난 덕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심사숙고한 결과 올가미가 팽팽하게 조여지기 전에 잘라버리기로 했습니다. (p.257) 

 

거짓이 뒤섞인 히틀러의 편지를 읽으며, 만약 무솔리니가 이 편지의 거짓들을 읽어 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면 참혹한 역사를 바꿀 수 있었을까. 혹은 그의 삐뚤어진 오판을 누군가 바로잡을 수 있었더라면. 이런 상상조차 아쉬움에서 번진 연장선일 뿐이지만, 편지만으로도 그의 성정을 파악할 수 있음에 편지가 가지는 엄청난 힘을 또 한 번 느꼈다. 

 

 

의심이나 두려움은 조금도 갖지 말게. 나는 자네가 그들이 찾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확신하니까. 자네를 응원하는 지지자이자 진한 애정을 품은 친구가 자네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p.165)

 

찰스 다윈이 받은 편지 중의 한 구절이다. 이런 강한 응원의 메시지가 그의 생물학 발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헨슬로는 다윈을 탐험에 추천하여 간접적 영향을 준 인물이지만, 정신적으로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믿고 응원하는 것. 그것만큼 긍정에너지를 뿜는 일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만난 세계사는 내가 근래에 만난 세계사 중 가장 사적이었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고, 쉬이 읽혔다. 그러면서 문득- 요즘처럼 편지를 쓰는 일이 드문 시절의 것들은 무엇으로 남게 될지 궁금해졌다. 여름밤, 추억 가득한 일기장을 엿보듯 그들의 편지를 엿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더 해보기도 하고- 훗날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보기도 하며 멋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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