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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철도 - 근대화, 수탈, 저항이 깃든 철도 이야기
김지환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6월
평점 :

이 책의 표지를 멍하게 보다가 나는 “희성 씨(미스터 션샤인)가 가질 수 없는 조선이 쓸쓸하고 무용하다고 말할 것 같아.”라는 말을 내뱉었다. 허무맹랑한 소리였으나, 이 책을 읽는 내내 '간절히 바라도 가질 수 없던 조선'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까. 우리나라 수탈에 큰 역할을 했던 철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선의 큰 변화 없이 세월을 쌓아 올리며 역사와 경제를 이어왔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은 더 높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철도'가 단순한 주제이기보다 근현대사를 전하는 '통로'랄까. 맞다. 어쩌면 이 책은 18세기 후반에서 출발하는 '역사 열차'인 셈이다.
그는 기차를 통해 획기적으로 달라진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한일관계에 드리울 어두운 그림자를 어렴풋이나마 예측하지 않았을까? (p.25)
'불수레'라 불리며 우리나라에 등장한 증기기관차는 근대화의 산물인 동시에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조선의 숨통을 막은 주범이다. 근현대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에 이미 알던 내용이지만 철도로 엮어진 이야기들은 새로운 슬픔이었다. 바위를 달걀로 치는 것처럼, 철도에 돌을 던지고 철로에 가마니를 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달리는 일본을 막을 수는 없어도 하루라도 늦춰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안중근 의사, 강우규 의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거점'이 된 기차역 의거들은 단순히 일본의 우두머리를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역의 마비와 일본에는 혼란을 주고 한국인들에게는 작게나마 숨을 틔우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안중근은 그가 바로 이토임을 직감했다. 러시아 관리들이 호위하고 오는 중에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일개 조그마한 늙은이가 염치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안중근은 “저것이 필시 늙은 도둑 이토일 것이다.”라며 단총을 뽑아 들었다고 회고했다. (p.147)
서울역 역사 앞에는 두루마기를 걸친 노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 이 노인은 1919년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가 부임하던 9월 2일 남대문 역(서울역)에서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이다. 해방 전에 강우규는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립운동에 상징적 인물이자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p.151)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필요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반도를 수탈하는 총과 칼, 군인들을 실어나르기도 하고, 소중한 문화재들을 실어야 했던 철도는 근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일 테다. 정치나 군사, 세계의 정세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물론 좋지만, 철도라는 필수 불가결한 소재를 바탕으로 책이나 잡지, 신문기사, 편지, 보고서 등의 사료를 인용하여 역사를 풀어내는 이 책 역시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전쟁이 한순간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연속 선상에서 다다른 것이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시 쉬이 보이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내내 떠오른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처럼, 전쟁 말고도 수많은 도구, '편리성' 때문에 이면은 어두운 그림자로 가려진 수많은 것들이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게 될지 우려스러운 마음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달리고 있는 기차처럼 역사도 쉼 없이 달리고 있음을 기억해서 문명의 부정적인 면을 키우는 반복을 거듭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