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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 울음이 그치고 상처가 아무는 곳, 보건실 이야기
김하준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5월
평점 :

손은 예쁘다가 아닌 아름답다가 어울린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손이다. 하물며 꼼지락 꼼지락 무얼 배우는 아이들의 손은 두말해 무얼할까. 나는 오늘도 아름다운 손으로 아이들의 귀한 손을 치료한다. (p.94)
우리 꼬마는 종종 손가락에 알록달록한 밴드를 붙이고 온다. 워낙 오리고 붙이고 하는 만들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벤 건가 싶어 보면 거의 보이지 않는 크기의 상처일 때가 많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어린이가 밴드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아이 유치원 보건 선생님은 거의 모든 아이가 선생님과 포옹을 하고 하원 할 만큼 인기가 많으셔서 의아했다. 담임선생님이나 도서관 선생님도 아니고 보건실 선생님이 왜 저렇게 인기가 많으시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의문이 이 책을 읽으므로 풀렸다. 아이들에게 보건 선생님은 그냥 상처를 치료하는 분이 아니었다. 손이 벨 때의 놀람도, 친구가 밀친 상처도, 넘어지며 생긴 마음의 스크래치까지도 치료하는 분이었다. 치료받으며 마음을 터놓기에, 마음도 상처도 곪지 않게 돕는 분이었다.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이제는 학교에 '선생님' 반 '교육공무원' 반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분이 반, 그저 월급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반이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오늘 이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이 오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칠만한 것들을 찾아 행정실을 귀찮게 하는, 작가 같은 선생님들이 아직은 더 많지 않을까. 우리 아이의 친구들이 하원을 하며 선생님들을 안아주고 온다는 것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마음조차 내어주시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보건실은 정말 '피가 날 만큼' 다쳐야 가는 곳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아이들이 작은 상처에도 보건실을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봤다. 아이들이 상처 치료에 더욱 기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인지, 마음을 터놓을 곳이 적기 때문인지. 이렇게 따뜻한 눈을 가진 선생님이 많기를 바라면서도,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어서 보건실에 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맥락에서 말이다. 실제 글 속 '보낼 수 없는 아이'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집에 아무도 없어 일찍 학교에 와서 보건실에 누워야 했던 아이. 이런 아이가 전국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니 코가 시큰했다.
학교 창문에 들어온 햇살 같은 글에, 아이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일러스트를 더해, 마치 따뜻함 두 숟가락을 꿀꺽 떠먹은 듯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온 마음이 따뜻해진다. 20년간 보건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상처와 마음을 치료해오신 시간이 따뜻해서 나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그가 만난 어떤 아이는 아직도 아프겠지만 대부분 아이는 괜찮아졌을 것이다. 그 '괜찮음'에는 분명 작가가 준 약과 마음이 함께 작용했음을 글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함'이라는 필터를 끼고 바라보기에 더 따뜻했을 아이들이다. 고운 눈으로 보았기에 고왔을 아이들임을 알기에 '학부모'의 마음으로 작가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우리 아이도 살아가며 늘 따뜻함 필터를 낀 선생님만 만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오늘은 작가의 글을 빌려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수 있기를. 그리고 아이들의 작은 아픔도 제때 발견해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p.178)” 그리고 모든 아이가 보건실이든 가정이든 어느 한 곳에서라도 마음껏 아플 수 있는 곳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껏 아파도 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