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시픈 당신에게 - 늦깎이 한글학교 어르신들이 마음으로 쓴 시와 산문 89편
강광자 외 86명 글.그림 / 한빛비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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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글을 알아가던 과정을 오롯이 기억한다. 나는 그 흔한 ㄱㄴ도 가르치지 않은 엄마지만, 우리 아이는 책을 읽으며, 간판을 읽으며, 마트 전단을 읽으며 글씨를 배웠다. 자신의 이름에서부터 내 이름 그리고 가족들의 이름,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 등의 순서로 글씨를 익히고 거기서 또 다른 글씨를 확장했다. 어느 날 아이가 떠듬떠듬 한 권의 책을 스스로 읽어냈을 때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손뼉을 쳤었다. 나? 아이고 말해 무얼 해, 엉엉 울었지.

 

다섯 살에 한글을 떼면서도 그렇게 그렁그렁한 눈이 되었는데, 칠순이 되어 한글을 배우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과장을 조금 보태, 안 보이던 눈이 번쩍 떠지는 심 봉사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글을 배우는 게 눈이 떠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지도 모르는 어르신들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이렇게도 눈물이 날 일인가. 나는 한장 한장, 그들의 글을 읽으며 글씨에도 눈물이 고이고 내용에도 눈물이 고였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얼마나 눌러쓰셨을지 알 것 같아서도 뭉클했고, 문장력 너머의 알 수 없는 감동에 찡했다. 

 

이분들은 보통 예순이 넘어서 글을 깨우치셨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어린이들이 글을 배우는 과정보다 더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리는 것과 많은 것이 그려지고 구겨지고 굴곡진 종이에 무엇을 그리는 것이 어떻게 비교 거리가 될까. 사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전에는 글씨를 모르는 기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보면서 글씨를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구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막연히 생각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야 버스를 타고, 송금하는 '기본'이라 불리는 일조차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은 더 감동이다. 

 

일부러 맞춤법을 교정하지 않았다는 말도, 작은 떨림도 그림도 그대로 옮기고 싶었다는 말도 온전히 공감이 간다. 어르신들은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쓰거나 그린 것뿐인데 그것을 읽으며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공부하는 자체가 행복하다는 어르신들에게 비친 불평하는 나의 얼굴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감사하지 않고 살아온 것 때문일 거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는다. 내가 받은 감동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데, 이 책의 문장들을 내가 발췌하여 기록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원문 그대로를 몇 장 옮겨본다. 부디 어르신들의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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