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 암을 지나며 배운 삶과 사랑의 방식
양선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눈물을 안타까워할 이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이들도 없는 병실에서 그날 나는 실컷 울었다. 슬픔을 토해 눈물의 파도로 번뇌·집착.미련·애착을 모두 삼켜버리겠다는 태세로. 한바탕 마음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때문이었을까. 태풍이 지나고 난 하늘은 먼지 하나 없이 맑듯, 이튿날 내 마음의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 (p.73~74) 

 

울지 않고 읽을 자신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나도 아팠고, 엄마다 보니 혹시나 이러다 내가 잘못되면 내 아이는 어떡해야 하나 생각해보았던 적도 있으니 이게 그냥 읽어질 리가 없다. 상상만으로도 '끝장'이라는 기분을 느꼈던 나이기에 실제 암을 만난 그녀가 써 내려간 글을 어떻게 울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그러나 계속 울기만 했더라면 나는 이 감상문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읽으며 울고, 울며 읽고 지금의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은 아래층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7층 애기엄마'에게 전해달라는 이야기에서였다. 참 지독하고 슬프고 웃긴 게, 같이 아픈 사람들은 유대감이 생긴다. “나는 아프지만 너는 극복할 수 있어.” 혹은 “나도 극복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등의 이야기는 서로가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실제 나도, 나와 같은 병을 앓았던 친구로부터 “나는 재발했지만, 넌 생각이 건강하니까 안 그럴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동요할까 봐 자신의 재발 이야기조차 나에게 숨겼으면서, 다시 아픈 자신이 나를 위로하다니. 진짜 고맙고, 진짜 빌어먹을 상황이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죽음은 슬펐지만, 그날 내겐 죽음이 차갑고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슬프지만 마냥 슬프지는 않은 그런 신비로운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p.126) 

 

마냥 슬프기만 했다면 나는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을 듯하다. 원래도 감정이입을 잘하는데, 엄마가 된 후 '공감병'은 거의 불치 수준이 되어 스위치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곤 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작가님은 자신의 컵에 담긴 물을 '반이나 남았다'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암치료 앞에서도 감사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세 번째 수술 후 마시는 물 한 모금도 달다고 표현하셨다. 사실은 그래서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었다. 

 

3부를 읽으면서는 거의 울지 않았다. 작가님의 으쌰으쌰 하는 기운을 받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20년 전 자신에게 쓴 편지가, 도화지를 채운 그림 하나하나가 큰 위안이 되었다는 말이 깊이 이해가 되었다. 언제인가 혼자 병원에 가서 간단하다지만 본인에게는 극도의 공포를 주는 “시술과 수술하니”를 기다리며 손에 들었던 책은 지금도 여전히 내게 힘을 주니까. 작가님의 극복 도구와 극복과정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작가님을 응원하는 마음이 온 마음에 번졌다. 나도 잘 관리하여 다시는 아프지 말아야지, 수없이 다짐했다. 나도 작가의 부축을 받고 두 발로 우뚝 서야지, 수없이 생각했다. 

 

어떤 의사들은 최악의 경우를 먼저 이야기하고, 어떤 의사는 최상의 경우를 이야기해준다. 작년에 내가 만난 두 의사는 전자와 후자 따로따로이었는데, 암일 수도 있다던 것이 물혹일 때의 안도감과 나는 아파 죽겠는데, 디스크 수술할 레벨이 아니니 치료하자는 의사 말에서 얻은 묘한 위로를 이 책에서는 둘 다 느꼈다고 하면 최소한 작가님을 이해하실까. 

 

어떤 상처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약이 된다. 책의 뒤표지에 적힌 말이다. 이 말이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내 마음 같아서 받아적기까지 했다. 작가의 말처럼 아프다고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 사람으로 사느냐, 죽은 사람으로 사느냐는 본인의 마음에 달렸음을 작가는 쉼 없이 전한다. 어른들이 수없이 하는 말,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 이왕이면 처음부터 단단한 땅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단단한 마음이 되도록 일어나보면 어떨까. 

 

아프고 나면 커피 한 모금, 초콜릿 한 알도 그렇게 귀하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것을 놓지 않기 위해 더 단단한 사람이 돼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