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도 길은 있으니까 - 스물다섯 선박 기관사의 단짠단짠 승선 라이프
전소현.이선우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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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쓰고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이 책은 내 이야기가 아니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쓰면서 불안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을 만났다. 인생의 방향타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나를 잡아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았는데 뜻밖에 소현의 모습에서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믿는 자신감이었다. (p.19) 

 

예전에 2급 항해사의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스물다섯 선박기관사라는 단어부터 흥미가 생겼다. 다들 그렇듯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기도 했고. 당연히 선박기관사가 직접 항해하는 이야기를 적은 책일 줄 알았는데, 이 책은 선박기관사를 “인터뷰”한 기록이다. 글을 쓰고 싶었으나 마땅한 소재가 없던 작가와 글을 쓸 시간은 없으나 소재가 풍부한 이의 만남. 이 책은 그렇게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오는 묘한 생동감이 이 책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한발 물러나 볼 때 세상은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남의 눈으로 보는 '나, 소현'을 통해 그 말을 여실히 이해했다. 

 

전교 1등이었던 아이가 의대 사관학교라고 이름난 상산고에서의 해양대는 나름의 실패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꾀를 부린 적도 없는데, 난 제자리에서 힘겹게 서 있는 건데 빠르게 앞서 나가는 이들에 의해 내가 뒤처지는 기분. 비록 “잘난 아이들의 레이스”에 서본 적은 없으나, 타의에 의해 뒤처지는 기분은 잘 알기에 선입견 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기로 했다. 아마 이것을 그녀가 직접 기록했더라면 많은 이들에게 '비공'을 받았을지 모르나, 타인의 눈으로 기록되었기에 그저 인생이 흔들리고, 아파하는 한 사람으로 보였다. 

 

머릿속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몸이 힘들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p.45) / 역시 돈의 힘은 위대했다. 이것도 여러 번 하자 고질병이었던 고소공포증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p.139) 

 

책을 읽는 내내 '소현'에게 뭉클했다가, 안쓰러웠다가, 기특했다가 하는 온갖 마음이 들었다. 아마 '선우' 역시 그런 마음으로 소현을 바라보았기에, 독자도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일 터. 그런데도 이 책에서 짠 내만 나는 것은 아닌 이유는, 그녀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 반짝이게 하는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늘 같은 사람들과 늘 같은 패턴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그녀는 자신이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의 일에 대한 감사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녀는 소위 “단짠단짠”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수시로 없어지는 시간대에서 사는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뤘다가 내일은 그 시간이 영영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르페디엠. (p.175) /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가 어찌 짠하기만 하다는 말인가. 그녀의 말대로 직접 머리를 잘라 꾀죄죄할지는 몰라도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선박항해사라는 직업 자체를 처음 알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잊고 살던 카르페디엠을 다시 떠올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매년 다이어리에 카르페디엠을 적던 야무진 나는 어디로 갔을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탓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이 일을 그만둘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적응하는 건 자기 몫이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면 거기에 쏟아부은 감정과 에너지만 아까울 뿐이다. 그럴 시간에 오히려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p.241)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시간을 많이 돌아보았다. 그리고 오래된 다이어리를 꺼내 과거의 나를 만났다. 나의 바다에서는 그저 헤엄만 치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을 둥둥 울린다. 솔직히 요즘의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살아내기에 지쳤던 터라, 많이 아팠던 터라 오늘의 행복만 생각하자고 수없이 나를 다독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살랑살랑 물장구를 쳐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선한 자극이 되어준 책에 감사를 전한다. 물론 나는 내일도 “오늘”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가. 나의 바다가 있음을 기억해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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