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여고생 (리커버)
슬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5월
평점 :
품절




호기심은 날 밖으로 이끌었고 날개뼈를 꿈틀거리게 했다. 내가 배운 것처럼 세상은 무섭지도, 험하지도, 척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여전히 날지 못한다. 그저 닭장 속을 나와 조그마한 날갯짓을 할 뿐이다. 하지만 곧 날 수 있노라고,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노라고 난 확신을 가진다. (p.37)

 

최근 내 피드에 이 책이 참 자주 등장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지라, 늘 책 피드가 올라오지만 같은 책을 여러 번 올리는 스타일은 아닌데 (책 친구만 있는 것은 아니니, 지겹다고 생각할까 봐 다소 자제하는 편) 나도 모르게 이 책에는 자꾸 애정이 가더라. 여고생의 여행기. 솔직히 첫 느낌은 이게 정말 재미있을까, 였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엉덩이 한번 안 움직이고 끝까지 읽었다. 미성숙한 여고생의 이야기들을 생각했던 나는 크지도 않은 코를 다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작가님에게 매료되어 마지막 장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 사실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더구나 어린 여자일수록 두려움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얘기일 터.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시작했고, 무섭고 험한 세상 대신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났다고 기록한다. 문득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은 일단 시작해야 아름다운 거라는 것을 새삼 떠올려본다. 

 

예전에는 타인의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가지 않은 곳, 혹은 갔던 곳에 타인의 감상을 덮어씌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코로나 이후 발목이 묶이며, 또 바쁘게 살아오며 여행기의 매력을 점차 느꼈다. 슬구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여행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다시 깨달았다. 그녀의 여행은 단순히 어디서 먹고, 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루만큼 자라는 성장기이고, 본인의 역사를 담담히 기록한 흔적들이다. 그래서 그녀는 꿈많던 내 10대를, 치열했던 나의 20대를, 좋으면서도 아프고 힘들었던 30대의 나날들을 돌아보게 했다. 어느새 40대를 목전에 두고 서서 생각해본다. 앞으로의 나는 어디를 향해가면 좋은지, 무엇을 경험하면 좋을지. 계획은 여전히 계획 중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앞으로의 내 나이를 경험으로 잘 채워보자는 다짐을 하게 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나이고, 여행은 나의 수많은 일상 중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자잘한 경험 속에서 내가 성장하기 때문. 중요한 건 나이의 숫자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 숫자 속에 들어있는 경험이다. (p.47)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는 대목을 읽을 때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나도 그랬다고, 다들 그런다고. 그리고 그녀가 다시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부분들을 만나면서 기특하다고 손뼉을 쳐주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모르고 살던 그녀에게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며 이 책을 읽은 것은 어쩌면 그때의 나를 떠올리기 때문이겠지. 이 책이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테다. 이 책을 만나는 누구라도 그녀의 문장들에서 묘한 힘과 응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리고 다짐 비슷한 것들을 하게 될 것 같다.

 

 

이제 선택하라. 무작정 배낭 하나 들고 떠날 용기를 가질지 아니면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의 목표로 미뤄둘지. 선택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잊지 말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야 한다. (p.117)

 

그녀의 말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다 배울 사람이 아니듯,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고 해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아님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온 마음을 다해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그녀가 주는 가르침을 소중히 가슴에 담아두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기.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기. 그녀는 내게 단순히 여행기의 즐거움을 준 것이 아니라, 다시 오늘을 사랑하게 하는, 또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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